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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S BEST

골목이라는 이름의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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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07월 호

스산한 거리가 생동감 넘치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이내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된다. 거리의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저항의 메시지를 담기도 하고 거리를 살 만한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벽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단순한 그래피티, 벽화가 아닌 도시의 정치, 경제, 사회의 면면을 읽을 수 있다. 도시의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로컬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면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그래피티에 주목해보자.

[캐나다 | 토론토] 야외 미술관으로 변신한 뒷골목 그래피티 앨리 Graffiti Alley

토론토 패션 지구에 위치한 그래피티 앨리는 숨겨진 명소다. 차이나타운 남쪽에 위치한 벽화 거리로 넓다란 뒷골목을 따라 다채로운 그래피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치 야외에 펼쳐진 미술관을 보는 것 같다. 수많은 이들이 벽을 채운 만큼 다양한 색깔의 그래피티를 만날 수 있는데 섬세하고 정교해 벽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그림도 많다. 토론토 뒷골목에서 만나는 그래피티는 유쾌한 요소가 도드라진다. 유머러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부터 귀여우면서도 무서운 분위기의 캐릭터까지 말이다. 아티스틱한 기운이 넘실대는 이 거리에서는 자신의 창작 영감을 불태우는 예술가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래피티 앨리를 걷다 보면 알록달록한 파스텔 톤 컬러로 토론토 스펠링이 씌여 있는 귀여운 벽화를 발견할 수 있다. 여행자들이 일부러 찾아와 인증샷을 찍고 가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래피티 앨리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콜롬비아 | 메데진] 컬러풀한 마을에 깃든 희망 코뮤나13 Comuna 13

수도 보고타에 이어 콜롬비아 제2의 도시로 불리는 메데진에 가는 이들이 꼭 하는 투어가 있다. 바로 코뮤나13 그래피티 투어다. 마약 소굴로 악명 높은 콜롬비아에서도 코뮤나13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구역으로 손꼽혔다.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코뮤나13을 근거지로 삼으면서 경찰과 갱들 사이의 총격전으로 죄 없는 주민들이 사망하는 일도 빈번했다. 공권력의 통제도 미치지 않아 강력 범죄가 빈번했던 코뮤나13은 2011년 총 6대의 전기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아찔한 높이에 자리한 꼭대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빠른 걸음으로도 30~40분 이상 걸리던 거리가 5~10분 이내로 단축된 것. 마을 초입부터 6층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컬러풀한 그래피티 로드는 마을을 더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다. 코뮤나13 그래피티 투어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로컬들이 진행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두운 시절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토대로 코뮤나13의 과거와 현재를 들려준다. 곳곳에는 카페와 기념품 숍 등이 있어 그래피티 굿즈를 구경하며 동네 풍경을 찬찬히 들여다보기에 좋다.

[대만 | 타이중] 급변하는 도시의 변천사를 요약하는 20호 창고 stock20

교통의 요지인 타이중은 도시 곳곳에 자리한 공장이 제 역할을 하고 있던 와중에 산업이 재편되면서 할 일을 잃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리와 노동자들의 발길이 끊긴 도시 곳곳에는 본래의 기능을 잃은 빈 건물들이 남게 됐다. 타이중시는 이를 철거하는 대신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내어줬고 썰렁하던 도시는 아티스틱한 터치를 입고 다시 생명력 넘치는 곳으로 변모했다. 대표적으로 과거 기차 물류창고였던 20호 창고가 작가들의 작업실과 미술관이 됐다. 타이중 기차역 뒤편으로 모인 이들은 기차선로가 놓였던 곳과 낡은 건물 외벽에 가벽을 세워 벽화를 그렸다. 이들의 손길이 닿자 도시의 분위기마저 바뀌었다. 타이중에는 <원피스>, <스폰지밥>, <슬램덩크>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가득한 벽화마을도 있다. 애니메이션 마니아인 웹디자이너가 자신의 집 앞 벽에 캐릭터들을 그리다 골목 전체로 뻗어 나갔고 젊은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불교, 도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의 세계관이 알록달록한 벽화로 그려진 난툰차이홍쥐엔춘, 일명 무지개 마을도 만날 수 있다. 자신이 사는 동네가 재개발되는 것에 반대해 그리기 시작한 벽화가 타이중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이 되어 이제는 보존 구역이 됐다. 뜨거운 삶의 의지가 녹아든 아트 월은 타이중의 시간을 아로새겼다.

[포르투갈 | 리스본] 파두의 흔적을 담은 벽 알파마 지구 모라리아 거리 Mouraria Quarter

많은 여행자들이 쉽사리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포르투갈어로 ‘매혹적인 항구’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발길 닿는 곳마다 마음을 빼앗는 마력이 있다. 그중에서도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힌 알파마(Alfama) 지구는 리스본의 옛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올드타운이다. 리스본 대지진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로마시대의 시가지와 1500년대의 집까지 남아 있는 곳이다. 삶의 애환이 노랫가락에 그대로 묻어나오는 포르투갈 전통 음악 ‘파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알파마 지구의 모라리아 거리를 걷다 보면 이곳 출신 파두 스타들의 모습을 벽화로 만날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은 낡은 벽 곳곳에 파두를 운명처럼 받아들인 이들의 얼굴이 남겨진 것이다. 어딘가 구슬픈 음조에 격정적인 감정이 툭 튀어나오는 파두처럼 벽화에도 수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듯하다.

  •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희성
  • 사진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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