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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

스페인 세비야

저마다의 색으로 흐르는 도시

유럽 > 스페인 > 세비야

발행 2021년 06월 호

도시 전체가 몇 세기를 품은 영화 세트장 같은 스페인 세비야. 이곳이 유럽에서 가장 이국적인 도시로
꼽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종교적 화해와 평화를 상징하는 세비야 대성당 사이로 하루의 빛이 스미는 시간부터 콜럼버스의 항해가 시작된 강에 달빛 윤슬이 흐를 때까지. 세비야의 시간들을 걷고 또 걸었다.

부러 길을 잃고 시간 속을 헤매게 되는 곳

아침부터 한차례 비가 내렸다. 우리에게 주어진 열다섯 시간 남짓한 세비야에서의 하루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다행히 먹구름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비가 지나간 세비야의 구시가지에는 더 깊은 채도의 수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건축물이 즐비했다. 유적지 사이를 오가는 21세기형 트램이나 양복을 잘 차려입은 회사원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항해가 가져다준 스페인의 황금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더할 나위 없는 풍경이었다. 트램이 구식이었다면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우리도 어느 밤에는 스페인의 어떤 시간으로 이끌리지 않았을까, 어느새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19세기 이후 건축된 건물들 사이를 거닐다 보면 이따금 현대의 것과는 다른 형태의 건축물과 마주하게 된다. 세비야가 여러 세기의 색이 깃든 도시기 때문이다. 한 세기로의 시간 여행을 택할 수 있다면 단연 대항해시대다. 이슬람교도인 무어인의 지배에서 벗어난 스페인은 아메리카를 개척하고 식민 통치를 시작하면서 대호황기를 맞았고, 그 부와 영광을 전시하기 위한 종교적 건축물들이 현재까지 잘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세비야 대성당이다. 이곳은 본래 무어인의 예배, 집회 장소인 모스크로 시작한 터였다. 무어인은 군주와 가족이 찾기 쉽도록 당시의 궁궐인 알카사르에 인접한 곳에 터를 잡았다. 다만 무어인이 지은 당시의 건축양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페르난도 3세가 세비야를 탈환한 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가톨릭 도시 중심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긴 지도자들이 많았다. 스페인은 결국 약 160년간 모스크였던 이곳을 토대만 남기고 모두 로마의 고딕 양식으로 바꿨다. 지금까지도 가장 규모가 큰 고딕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대항해시대에 식민지로부터 얻은 부와 영광을 과시하고자 했던 스페인의 욕망이 잘 반영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에서 크고 작은 성당 투어를 마친 뒤였음에도 그 웅장함에 압도당할 정도였다.

한편 옛 모스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도 있다. 지금은 출구로 사용되는 북쪽 출입문과 이어진 파티오 데 로스 나란호스가 대표적이다. 성당은 어두운 내부와 작은 창들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대비가 웅장함을 배가시킨다. 성당 내부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마주하는 풍경은 일렬로 늘어선 오렌지나무들과 푸르른 안뜰이다. 세비야 대성당이 모스크일 당시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 마음과 몸을 청결히 하기 위해 손과 발을 씻던 곳으로 지금은 작은 분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렌지나무 사이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시가지 어느 곳에서든 종루가 보이는 히랄다 탑이 있다. 이 탑의 몸체는 이슬람 사원을 장식하는 기하학적 문양의 벽돌로 쌓아 올렸다. 가톨릭인은 모스크를 세비야 대성당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맨 꼭대기 층을 종탑의 용도로 바꾸고 르네상스 양식을 적용했다. 종탑에는 24개의 다른 이름을 가진 종이 달려 있고 종루 꼭대기에는 엘 히라딜로라는 이름의 청동 풍항계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동상은 종교적 의미인 십자가와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양손에 들고 있다. 바로 가톨릭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히랄다 탑은 스페인에서 가장 이슬람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중세 유럽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대에 와서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것 또한 파티오 데 로스 나란호스에 화해와 평화를 상징하는 오렌지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 에디터 박진명
  • 김진빈
  • 사진 김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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