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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S BEST

술과 볼이 익어가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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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05월 호

어딜 가도 마주할 수 있는 ‘술’에 대한 핑계와 이유. 하지만 어떠한 변명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5개의 도시가 있다. 현실적인 고민은 저 멀리로 날려버리고
감각은 더욱 세밀해지며 볼은 빨갛게 익어갈 술을 빚는 도시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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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에서 탄생한 예술 Ireland, Dublin

아일랜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음악과 맥주. 마치 파리의 예술가들이 카페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일찍부터 아일랜드의 작가들은 펍에서 글을 썼다. 소설 <더블린 사람들>을 쓴 제임스 조이스는 그의 또 다른 소설 <율리시스>에서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펍을 스치지 않고 더블린의 끝까지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실제로 더블린엔 1000개가 넘는 펍이 있다. 기네스가 성공 가도를 달리며 맥주의 성지로 주목받던 19세기 초만 해도 아일랜드에는 200여 개의 양조장이 있었지만 현재는 10개가량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아일랜드는 기네스 하나만으로 여전히 세계적 맥주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 모든 시작점에는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가 있다. 1759년,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은 기네스는 지금의 자리인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가 있는 곳에 양조장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맥주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재미있는 점은 설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양조장을 계약금 100파운드를 내고 9000년간 매년 45파운드를 지급하는 독특한 계약을 맺었다는 것. 물론 지금도 이 계약은 유효하다. 맥주가 까맣게 변하는 이유는 보리와 홉을 까맣게 볶기 때문인데, 이때 온도가 섭씨 232도까지 올라가야 비로소 검게 그을린다. 현재까지 기네스의 브랜드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는 더블린 사람들의 열정은 흑맥주를 닮았다. 더블린은 찌르르한 흑맥주와 여러모로 참 잘 어울리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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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맥주의 도시 U.S.A., Portland

미국에서 맥주의 성지를 찾는다면 단연 포틀랜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맥주 양조장을 보유할 정도로 포틀랜드의 시내에는 크고 작은 브루어리가 수없이 많다. 인구당 맥주 양조장의 수가 미국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포틀랜드가 자리한 미국 서부의 오리건주는 유독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를 이용해 포틀랜드 사람들은 1980년대부터 창의성을 발휘하여 각자 다른 방식으로 크래프트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포틀랜드 사람들은 맥주를 커피처럼 마신다. 오전 11시부터 브루어리 펍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다. 유럽인들이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는 것처럼, 브런치부터 저녁 식사까지 이곳에서 맥주는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친구다. 대형 공장에서 맥주를 사다 파는 것이 아니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브루어리에서 신선한 맥주를 바로 받아 건네주니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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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향한 끝없는 구애 France, Champagne

프랑스에서는 이 말이 관용구처럼 쓰인다. “맛없는 프랑스 와인은 있어도, 맛없는 샴페인은 없다.” 이 문장의 근거는 이렇다. 저가의 프랑스 와인 중에는 원액을 해외에서 수입해 겉모양만 프랑스 와인으로 둔갑한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프랑스에는 와이너리가 너무 많기 때문에 맛과 품질에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샴페인은 프랑스 북부인 샹파뉴아르덴(Champagne-Ardenne) 지역에서 생산하는 포도로만 만들어야 하며, 2차 발효라는 병내 재발효를 통해 탄산을 생성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복잡하고 제약이 많기에 맛있는 샴페인을 누구나 쉽게 만들 수는 없다. 샹파뉴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 방식에 따라 고유한 매력을 담은 샴페인을 제조하는 하우스가 100여 개나 있다. 백악층 아래 자리한 지하 저장고 투어부터 오래된 수도원 지하실을 저장고로 활용하는 와이너리까지 샴페인 거품처럼 통통 튀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방문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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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으로 축배를 든 거룩한 땅 Georgia, Kakheti

와인이 세상에 처음 나온 곳은 조지아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8000년 전, ‘크베브리(Qvevri)’라고 불리는 흙으로 만든 항아리에 포도주를 담가 먹은 것이 와인의 시작이다. 와인(Wine)이라는 용어도 조지아어로 와인을 뜻하는 ‘그비노(Ghvino)’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지아에서 와인은 우리나라의 김치처럼 집집마다 각기 다른 전통 방식을 따라 직접 술을 담그는 것이 특징이다. 조지아를 여행하다 보면 도처에 와인 가게가 널려 있고, 동상이나 건축물 등에는 포도나 와인잔이 꼭 들어가 있다. 조지아에서도 와인의 본고장은 카헤티(Kakheti) 지방이다. 이 지역에서는 와이너리 투어가 유명하다.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시야의 포도밭을 배경으로 와인에 대한 역사와 기원을 설명한다. 조지아 와인은 재배 포도 품종만 해도 500여 종이 넘는다. 크베브리 와인을 만들 때 조지아의 포도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와인 양조 후 남은 찌꺼기를 발효시켜 도수 높은 술 차차(Chacha)를 만든다. 조지아인들은 와인만큼이나 차차를 사랑한다. 조지아에서 경험하는 와이너리 투어는 다른 차원의 와인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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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준 뜻밖의 선물 Spain, San Sebastián

시드라(Sidra)는 스페인 북부 지방의 화려한 식문화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이는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사과주로, 영어로는 ‘사이더(Sider)’라고 부른다. 시드라를 설명하자면 9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로마인들이 오늘날의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과 인근 스페인 바스크 지역을 정복했을 때다. 와인을 좋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로마인들은 늘 그래왔듯 정복 지역에 포도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북부 지방은 포도가 성장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인 탓에 포도나무가 자라지 못했다. 이에 로마인들은 남아돌던 사과로 와인을 담그기 시작했고, 이는 지금의 시드라가 되었다. 특히 스페인의 바스크(Basque) 지방이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산세바스티안에서는 매년 시드라 축제가 열린다. 바스크 지방의 펍에서는 레스토랑을 시드레리아(Sidreria)라고 부르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시드라를 파는 곳이라는 뜻도 있지만 시드라를 1m가량 되는 높이에서 흘리지 않고 따라주는 숙련된 직원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묘기처럼 보일 만큼 눈길을 사로잡는 이 같은 광경이 시드라의 명성을 더욱 높였을지도 모르겠다.
  • 에디터 박진명
  • 사진 AB-ROAD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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