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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쿠바

북아메리카 > 쿠바

발행 2023년 01월 호

끊임없이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게 여행이다. 가끔은 어딘가에 머물고 싶다는 작은 꿈을 꾸기도 한다. 여행자라면 한 번은 꿈꾸었을 작은 소망, 그 꿈이 현실이 된 이들이 있다. 커피가 좋아서, 스쿠버다이빙이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혹은 그저 그곳에 반해서. 각기 다른 이유로 그리고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다섯 명의 인생 2라운드가 펼쳐진 곳은 어디일까. 삶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여행자들의 로망 하면 쿠바를 빼놓을 수 없다. 누군가는 아름답다 말하고 누군가는 지상 최고의 낙원이라고도 한다. 시간이 멈춘 나라엔 60년도 훌쩍 넘은 클래식카가 거리에 즐비하다. 골목에선 살사 라이브 음악에 개도 고양이도 춤춘다는 곳, 그러나 쿠바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다. 하루하루가 살아가기 위한 전쟁이다.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끔찍하게 쿠바를 사랑하는 사람, 장희주의 쿠바 라이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 국립중앙박물관 전문 해설사였던 그녀는 지금 쿠바의 수도 하바나의 국립미술관 전문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를 처음 여행했던 건 2010년 12월이었다. 그리고 2011년 1월, 하바나의 거리에서 길을 묻다 인연이 된 남자는 남편이 되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후 서울에선 ‘리틀 쿠바’라는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했었다. 그렇게 한동안 한국에서 살았지만 결국 둘은 쿠바로 다시 돌아왔다. 쿠바에서의 또 다른 삶은 모험이었다. 여행자들에겐 낭만일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사람에겐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로 쿠바의 경제가 더 어려워졌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일상으로 전해졌다. “관광객처럼 좋은 장소, 맛있는 음식을 찾는 게 아니다 보니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발로 뛰면서 구해야 했어요. 독립적인 어른이 아니면 쿠바에서는 생존이 어렵죠. 매일 삶의 시험대에 놓여지는 기분이에요. 내가 나로 살지 않으면 어려운 곳이 쿠바죠.”

쿠바에서 산 지 벌써 6년째다. 이젠 한국인 장희주보다 쿠바에서의 앙헬라(가톨릭 세례명)가 더 익숙하다. 쿠바나(쿠바 여자를 지칭하는 스페인어)처럼 싸우고 쿠바나처럼 강해졌다. 가끔은 가족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이젠 쿠바가 그녀의 나라다. 가족들이 보고 싶고 애틋하긴 해도 한국이 마냥 그립지는 않다. 물론 외로울 때도 있다. 하지만 외로움은 받아들이면서 살기로 했다. 가끔 옥상에 올라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면 시원한 바람이 친구가 되어주곤 한다.쿠바라는 나라는 참 묘하다. 특히 장희주 가이드에게 쿠바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쿠바에서는 오롯이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매력에 빠지면 헤어날 수 없단다. “쿠바에서는 나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어요. 그건 쿠바의 자연이 주는 이상한 매력이기도 하죠. 이곳에서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요. 이상한 나른함이 있는데 그건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경험하지 못한 거예요. 나에게 집중해야 하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보여주죠.”
시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녀 역시 시와 문학에 관심이 많다. 한국 문학뿐 아니라 틈만 나면 쿠바 작가의 글을 읽고 쿠바의 사회와 문화에 관한 것들을 찾아 공부한다. 가끔 쿠바 사람들과 열띤 토론을 벌일 정도로 모든 면에 적극적이다. 여행했던 나라 중 쿠바 말고 강렬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나라는 없었다고 한다. 예전에 쿠바 여행에서 돌아온 후 썼던 일기를 찾았는데 서정주 시인의 ‘꽃밭의 독백-사소단장’의 구절을 써둔 걸 발견했다. 마지막 구절에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라는 부분이 있었고 쿠바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삶의 기미를 느꼈다. 그리고 벼락과 해일만이 그 길일지라도 문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쿠바에서 살아보니 정말 벼락과 해일이 넘쳐나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문을 열고 싶어서 아직도 서성대고 있는 중이다.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을 사는 장희주 가이드,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벼락과 해일에 맞서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도한다.

  • 에디터 김춘애
  • 사진 장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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