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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

Serbia

발칸의 심장

세르비아

유럽

발행 2023년 01월 호

남슬라브 민족이 살고 있는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로 불린다. 1차 세계 대전과 크로아티아 및 보스니아의 내전 등으로 인해 분쟁과 갈등의 땅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 남슬라브의 여러 국가 중 세르비아는 이 뜨거운 발칸반도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세르비아의 현대사는 전쟁과 내전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평화로운 도시 풍경은 여행자에게 특별한 여운을 선물한다. 복잡한 역사만큼이나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세르비아로 떠나는 여행.
©Arndale / Shutterstock.com

발칸반도 정중앙에 위치한 세르비아는 늘 파란만장한 역사의 한가운데 있어왔다. 쉼 없는 전쟁과 내전이 이어지는 동안 도도히 흐르는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을 따라 끝없는 피와 눈물이 흘러넘쳤다. 그런 세르비아의 심장과도 같은 도시가 바로 ‘백색의 도시’란 뜻을 지닌 수도, 베오그라드다. 베오그라드의 북서쪽, 높은 언덕에 세워진 칼레메그단 요새는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다. 도나우 강과 사바 강의 두 물줄기가 하나로 만나면서 이뤄내는 시원한 전경과 그 너머로 펼쳐지는 노을은 누구와 함께 보든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준다. 칼레메그단 요새는 오랜 세월 셀 수 없이 많은 전투가 치러진 격전지였으나 지금은 성벽 아래쪽에 있는 무기전시관에서만 그 흔적을 느낄 수 있을 뿐, 요새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원처럼 조성되어 베오그라드 시민과 관광객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베오그라드가 백색의 도시라 불리는 데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동로마 시절에 이 도시를 흰색 돌을 쌓아 지었다는 설이고, 또 하나는 오스만튀르크의 침공 당시 사바 강 위로 피어오른 우윳빛 안개와 햇빛 때문에 도시 전체가 하얗게 빛났는데, 그 아름다움에 튀르크인들이 잠시 공격을 멈췄다는 전설이다. 비록 현재의 베오그라드는 백색과는 거리가 먼 회색빛 풍경에 가깝지만, 적어도 칼레메그단 요새에서 바라보는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은 한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튀르크인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해준다.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백색은 칼레메그단 요새보다는 차라리 성 사바 성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르비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큰 정교회 성당이라는 성 사바 성당은 세르비아의 수호성인이자 세르비아 정교의 창시자인 성 사바에게 헌정된 교회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새하얗게 빛나는 외벽과 거대한 청동 돔 지붕, 그 위에 반짝이는 십자가가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한다. 특히 지하로 내려가면 벽화부터 천장까지 화려한 금빛 모자이크가 눈부시게 반짝이면서 남슬라브의 맏형이자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리더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해온 세르비아의 존재감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제48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언더그라운드>는 베오그라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나치 독일의 베오그라드 공습으로 시작해 보스니아 내전에 이르기까지 잔혹한 역사에 기초한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영화는 이를 슬프고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복잡한 정치와 분쟁의 한가운데 있던 도시였던 만큼 세르비아는 치러야 할 대가도 컸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오스트리아에게 공격당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파르티잔과 나치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코소보 내전 시에는 78일간 NATO의 공습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베오그라드 시내에는 NATO의 폭격으로 파괴된 국방부 건물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는 재건할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남겨놓은 것이다.
중세풍의 정교회와 고풍스러운 유러피안 스타일의 호텔, 여기에 유고슬라비아 시절의 공산주의 건물과 내전의 흔적까지 남아 있는 베오그라드 시내는 그 복잡한 역사만큼이나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곳이다.
©FarukPhotography / Shutterstock.com

  • 에디터 최인실
  • 김주연(<슬라브, 막이 오른다> 저자)
  • 사진 김주연, AB-ROAD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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