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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2년 12월 호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알고 보면 지리로 인해 생겨난 것들이다. 지질학적 특성에 따라 기후가 결정되고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자재로 집을 지을지 등이 결정된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그들만의 문화가 형성되고, 문화를 알면 지역 사람들의 성격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지리적 위치는 곧 역사를 결정짓기도 한다. 지리를 모르고는 그 나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서지선 작가. 지리를 알고 이해하면 그저 먹고 보고 즐기는 여행을 떠나 경험의 가치가 향상된다. 지도 위를 걸으며 세상을 수집하는 여행자, 서지선 작가와의 흥미로운 담소.

주변의 친구들이 자신처럼 세계지도를 보고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지선 작가에게는 꽤 충격적이었다. “친구들은 저처럼 쉬는 시간에 지리과부도를 구경하지 않더라고요.(웃음) 심지어 지리를 싫어하기까지 하던걸요. 그때 제가 좀 특이하다는 걸 알았어요.” 세계지도를 펼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13살의 서지선 작가는 엄마를 따라 베이징 여행을 다녀온 뒤 세계지도에 부쩍 관심이 늘었다.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었지만 중국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곤 궁금해졌다. 지도에서 중국보다 더 멀리 있는 곳에는 과연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지 말이다. 그렇게 성인이 된 서지선 작가는 지도를 보고 수집해온 지리적 관점으로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지리적 관점으로 여행하면 무엇이 좋냐고요? 일단 주변 사람들의 호불호나 여행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여행지를 고를 수 있어요. 지리적으로 어떠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지, 기후는 어떤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쾌적한 시즌에 여행을 할 수 있죠. 날씨가 여행 컨디션을 좌우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에요. 준비물도 똑똑하게 가져갈 수 있고, 무작정 저렴한 티켓값에 낚여 여행 갈 일도 없어요. 대개 여행하기 힘든 달에 비행기 티켓값이 저렴해지곤 하거든요. 지리적 특성을 이해하면 이런 것들이 한눈에 보여요.”

지리라 해서 땅에 관한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땅은 곧 역사고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보니 인문지리적 관점에서도 여행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여행지의 원주민이 어떠한 문화권에 속하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어떤 기후에서 자라 어떤 성격을 가지는지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지리를 알고 나면 많은 정보를 축적할 수 있어 매번 힘들게 검색하며 여행지의 정보를 찾아낼 필요가 없다. 서지선 작가는 지리를 좋아하다 보니 새로운 자연환경을 만날 수 있는 여행지를 선호한다. 오래전부터 동경했던 사하라 모래사막을 방문했을 때의 감동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모로코에서 ‘사막의 관문’으로 불리는 메르주가에 도착했을 때, 지금껏 달려온 건조한 암석사막이 아닌 모래사막이 등장하더라고요. 차츰차츰 모래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모래 산이 갑자기 등장한 느낌이었어요. 맨발로 감촉을 느끼며 사막을 오르고, 모래 능선 위에 앉아 사하라의 햇빛을 본 순간이 떠올라요. 세상에 나와 지구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정말 특별했어요.”

서지선 작가는 지리적 특성이 뚜렷한 곳으로 여름철 지중해 지역을 꼽았다. 고온건조한 지중해성기후 특징으로 인해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여행하기 좋다. 다만 비가 오지 않는 만큼 매우 덥다. 실제로 서지선 작가가 여름 동안 몰타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5월부터 여름 내내 비가 단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반대로 싱가포르를 여행했을 때는 매일 비가 한 번씩 왔다. 열대우림기후 특징인 스콜 현상 때문이다. 서지선 작가는 여전히 ‘지리’를 학생 때 배우던 고루한 과목으로만 여기는 여행자들을 위해 <지리 덕후가 떠먹여주는 풀코스 세계지리>라는 책을 펴냈다. 어른들을 위한 지리 입문서이자 여행 교양서다. 이어 어린이들을 위한 <이토록 환상적인 세계 도시는 처음입니다만!>을 출간했다. 단순히 관광지를 소개하는 내용이 아니라 각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서지선 작가가 어렸을 적 느꼈던 흥미로운 세계의 이야기에 자신의 세상이 바뀌었던 것처럼, 많은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바뀔지도 모른다. 서지선 작가는 팬데믹으로 여행이 멈춘 지난 몇 년 동안 취미 부자가 되어 원데이 클래스를 200여 개 가까이 도전했다. 새로운 도전이 좋아 현재는 독립출판 과정을 배우고 있는 중이고 그간 배워둔 디지털 드로잉을 접목해 그림이 실린 여행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 책의 제목은 <유럽 마그넷 여행>이 될 것 같아요. 말을 뱉어버렸으니 빼도 박도 못하게 출간하게 생겼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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