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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ation

박물관 학예사가 사랑에 빠진 도시

프라하

유럽 > 체코 > 프라하

발행 2022년 11월 호

흔히들 말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라고. 그럼에도 선뜻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여유를 갖고 오롯이 나를 위해 떠났던 여행이 얼마나 될까. 이런저런이유로 미룬 여행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자고로 용기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진심으로 스스로를 사랑하며 여행을 떠났던, 흥미로운 나 홀로 여행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예연구사, 건축학 박사,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작가, 블로거 그리고 엄마. 국립민속박물관 최미옥 학예연구사의 또 다른 수식어들이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겠지만, 그중 가장 힘든 일은 ‘엄마’라고 말한다. 전시 준비 기간이면 야근이 일상이고, 다른 곳에서 전시가 있거나 자문 회의가 있을 땐 어디든 달려간다. 그리고 저녁엔 어김없이 엄마로 돌아온다. 주말도 예외가 아니다. 일요일이면 일부러 성당에 가고 아들의 합창단 자모 회장도 맡았다. 최미옥 학예사의 일상은 숨 쉴 틈조차 없어 보인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틈만 나면 배낭을 챙기는 그녀는 소문난 여행 마니아다.
“여행이란 단어만 들어도 벌써 심장이 두근거리네요. 스무 살부터 시간과 돈이 생길 때마다 여행을 다닌 것 같아요. 대학생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당시에는 많이 가지 않던 아프리카, 인도차이나반도(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여행했어요. 세 살 아이와 함께한 남미의 마추픽추와 우유니 소금 사막, 티티카카 호수로의 여행도 오래 기억에 남아요. 아이를 데리고 가기엔 쉽지 않은 여정이었는데, 초보 엄마의 용감한 여행이었죠.”

최근 그녀는 체코의 프라하를 다녀왔다. 팬데믹 후 처음 떠났던 그녀의 프라하 여행은 새로운 발견과 일상 탈출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마침 2022 세계 박물관 대회가 열려 이 행사에 참여할 겸 열흘간 머물렀다. 그녀의 세 번째 프라하 여행이었는데, 1996년이 마지막이었으니 무려 26년 만의 재방문이었던것. “열흘간 프라하에만 머물면서 이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졌어요. 근현대 선구적 그래픽 디자이너라 할 수 있는 알폰소 무하의 나라이고, 소싯적 저를 잠 못 들게 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나라, 또 그가 존경한 국민 작가 카프카의 나라라는 사실만으로도 매력 있죠.” 그리고 이야기는 박물관으로 이어졌다.
“체코 프라하가 무엇보다 매력 있었던 건 박물관 여행, 도심 안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박물관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 또 그 박물관의 내용이나 연출력이 너무 훌륭했다는 점이었어요. 지금까지 대략 500~600곳 이상의 박물관을 여행했는데, 이미 가본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더라고요.”
오랜만에 다시 만난 프라하, 그녀에겐 모든 게 아름다웠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풍광이 떠올라요. 와인색 지붕이 아기자기 모여 있는 도시의 모습, 너무 아름다웠죠. 제게는 그 풍경이 카를교나 화약탑 같은 대표 명소보다도 더 기억에 남아요. 프라하 시티 박물관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요. 이 도시는 카를 4세의 지휘 아래 프라하 성이 재건축되었고 주변 도시가 계획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해요. 대단하지요. 이 대목에서 다시금 인류의 위대한 정신과 활동을 만나게 하는 여행의 매력을 느꼈어요.”

2019년엔 그간 여행했던 박물관의 이야기를 모아 <뮤지엄X여행>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여행지 어디서든 우선 박물관을 간다는 그녀는 직업이 전시를 만드는 거라 그 도시의 박물관 현황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또 역사 박물관이나 시티 박물관 같은 곳은 여행하고 있는 나라와 도시를 단시간에 객관적으로 이해하기에 가장 훌륭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곳은 바로 시장. 현지 사람들의 생활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고 잠시나마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보는 경험이 너무 즐겁다.
특히 좋아하는 장소는 벼룩시장인데 박물관과 시장 여행은 혼자 하기에 제격이다. 아니, 혼자 해야 더 재미가 있다.최미옥 학예사의 오랜 취미는 살사 댄스와 탱고다. 20년 전에 살사를 처음 배웠고 지금은 탱고와 사랑에 빠졌다. “제게는 두 가지 나만의 여행 습관이 있어요. 하나는 어느 도시를 여행하든 꼭 ‘밀롱가’를 가요. 매번 느끼지만 탱고라는 취미가 혼자 여행을 외롭지 않게 해줘요. 어느 도시를 가든 같은 음악에 같은 춤을 추는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그림엽서 보내기에요. 이건 어릴 적 경험에서 기인한 위대한 유산인데요. 할아버지라고 부르던 한국청소년연맹 초대 총재님께서 해외 출장 때마다 저에게 꼭 해당 지역의 풍광이 담긴 그림 엽서를 보내주셨는데, 그 기억이 너무 좋아서 여행 때마다 지인이나 가족에게 그림엽서를 써요. 요즘은 초등학생인 제 아들에게 엽서를 써요.”
지금도 세계지도만 보면 설렌다는 그녀는 혼자 하는 여행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을 좀 더 객관화해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살던 시간과 환경을 거리를 두고 타자로서 바라보게 되거든요. 여행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에도 온전히 집중하게 되고요. 그렇게 나란 사람을 더 알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날마다 새로운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다.

  • 에디터 김춘애
  • 사진 최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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