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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

Tokyo

도쿄 근교에서 발견한

매력적인 소도시

아시아 > 일본

발행 2022년 11월 호

3년 가까이 막혀 있던 하늘길이 열리기까지 일본 내 여행 트렌드는 크게 변화했다.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와 같이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대도시보다 비교적 한적한 소도시와 평온한 작은 마을 여행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 동시에 푸른 자연 속에서 구슬땀 흘리며 즐기는 체험과 캠핑도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즐길 만한 도쿄 근교의 보석 같은 여행지를 소개한다.

지바의 작은 에도, 사와라(佐原)

먼저 지바현 북동부 가토리 시(香取市)에 있는 사와라(佐原) 마을로 향해보자. 일본 최대 지류인 도네강(利根川)에서 뻗어 나온 오노강(小野川)이 흐르는 마을은 에도 시대와 상업 발달로 크게 번영했다. 당시의 영광이 묻은 오래된 가옥과 전통 상가, 근대 건축물이 다닥다닥 붙은 고즈넉한 풍경 덕분인지 이곳은 ‘지바의 작은 에도’라는 별칭이 붙었다. 과거 여행을 하는 듯 인상적인 골목골목과 유유히 마을 중앙의 수로로 지나가는 나룻배, 그리고 주변으로는 주전부리를 든 채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여행객들의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나룻배 선착장 근처에는 반 평생 상인으로 살다 50세에 이르러 측량가가 된 이노 타다타카(伊能忠敬)가 살던 고택(伊能忠敬旧宅)이 있었다. 걸어서 일본 전역을 누비며 현대 지도에 버금가는 정밀한 지도라 평가받는 <대일본 연해흥지전도(大日本沿海輿地全図)>를 그린 그의 발자취가 남은 고택을 살펴본 후 건물 앞에 놓인 도요하시 다리를 건너 그의 기념관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각종 특산물을 판매하는 상점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면 빨간 벽돌과 푸른 첨탑으로 이루어진 근대 건축물인 사와라 미쓰비시관(佐原三菱館)이 있고, 낭만이 흐르는 거리 뒤편 골목 곳곳에는 숨은 찻집과 맛집이 있다.

고구마 왕국, 라폿포 나메가타 파머스 빌리지(らぽっぽ なめがたファーマーズヴィレッジ)

사와라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맑은 공기와 풋풋한 흙 냄새를 느끼며 자연과 농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테마파크인 라폿포 나메가타 파머스 빌리지로 향했다. 고구마로 유명한 이바라키 현 나메가타 시의 남동부, 우자키 지구에 위치한 이곳은 파란 물결이 잔잔히 흐르는 기타우라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이곳은 지난 2015년 가을, 기존에 방치되어 있던 구 야마토 제3초등학교 건물과 주변 토지를 활용해 만든 고구마의, 고구마에 의한, 고구마를 위한 공간이다. 예로부터 고구마 농업이 지역의 주 경제원이었던 나메가타 시는 도시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노동 인구가 빠져나갔다. 그 결과 인구는 1만 명가량 감소했고 도시는 점차 활력을 잃어갔다. 지자체와 주민들은 마을을 살릴 방안을 찾던 중 특산물인 고구마에 주목했다. 그렇게 고구마 수확 체험장과 고구마 박물관, 레스토랑, 캠핑장을 결합한 ‘라폿포 나메가타 파머스 빌리지’가 만들어진 것. 일본 최초이자 유일한 고구마 박물관과 두 발로 흙을 밟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며 고구마를 캐는 체험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 2019년에는 빌리지에 모인 참가자 1233명이 한 장소에서 동시에 고구마를 수확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는 고구마 모종 심기, 재배, 수확, 숙성에 이르기까지 저변을 확대해 더욱 다양한 체험공간이 되었다.

또한 테마파크 중앙에 자리한 본동에는 고구마로 만든 쿠키와 빵을 파는 베이커리, 고구마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이후로는 주변에 조성된 논밭을 활용한 아트웍을 감상할 수 있고 주변으로는 글램핑장도 운영하고 있다. 글램핑장을 이용을 희망하는 방문객들은 트레일러 하우스나 텐트에서 숙박하게 되는데 냉난방이 갖춰져 있어 합리적이다. 직접 캔 채소와 육즙이 흐르는 고기를 더해 즐기는 바비큐는 금상첨화다.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양조장, 스도혼케(須藤本家)

다음 여정이 펼쳐지는 가시마 시는 이곳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이자 국보 중 하나인 검이 모셔진 가시마 신사가 있다. 신성한 분위기가 흐르는 공간에서 소원을 빈 후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양조장인 스도혼케(須藤本家)에 방문할 수 있다. 가시마 시의 북부 시골에 자리한 양조장은 건물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양조장보다는 오래된 사원처럼 보이는 이곳은 고급스러운 기와를 얹은 담벼락과 큼직한 정문이 방문객을 반긴다. 잘 다듬어진 섬잣나무를 비롯해 수령 800여 년을 자랑하는 케야키(欅・느티나무의 일종) 등 굵직굵직한 나무가 서 있고 그 사이로 고풍스러운 스도혼케 본관 건물이 내비친다.

1141년에 문을 연 스도혼케는 무사 집안이었던 스도(須藤) 가문이 만든 곳으로, 영주에게 세금을 바치지 못해 곤경에 빠진 가난한 마을 주민들을 위해 술을 빚어 판매한 돈으로 세금을 대납한 데서 출발했다. 무사가 운영하는 곳인만큼 간판을 걸지 않는다는 철칙 하에 55대째 간판 없이 운영하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무를 자르지 마라’는 선조의 가르침에 자연과 함께 하는 경영 방침을 고수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는 “좋은 쌀은 좋은 흙에서 비롯되고, 좋은 흙은 좋은 물의 영향을 받으며, 좋은 물은 좋은 나무에서 출발한다”는 의지가 담긴 신념이다. 이 때문일까. 일본 장인 정신의 방점을 찍은 IWC를 비롯해 각종 국제 주류 품평회에서 상을 휩쓸었으며 세계적으로 호평받은 곳이기도 하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양조장의 역사와 술을 빚는 과정과 양조장이 자랑하는 명술과 관련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스도혼케에서는 긴조슈(吟醸酒)를 숙성시켜 만든 고슈 (古酒)가 유명한데 숙성 과정에서 색이 노랗게 변하는 다른 술과 달리 이곳에서 빚은 고슈는 투명한 색을 자랑하며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양조장이 제공하는 세 가지 술을 시음할 수도 있다. 고향의 명예(사토노 호마레, 郷乃譽), 설산(카잔, 霞山), 앵두(유스라, 山桜桃)를 시음했다. 먼저 고향의 명예는 맛과 향이 강한 동시에 뒷맛이 깔끔했고 이어서 음미한 설산은 맛이 깊고 풍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맛본 앵두는 앞서 마신 두 술보다 맛과 향이 훨씬 강해 목 넘김마다 지난 시간 스도혼케가 고수해 온 묵직한 장인정신이 전해지는 듯 했다.

400년 넘은 일본 3대 아침 시장, 가쓰우라 아침 시장

지바현을 대표하는 항구 중 하나인 가쓰우라에서는 매일 아침 시장이 열린다. 사가현 가라쓰의 요부코 시장과 이시카와현의 와지마 시장과 더불어 일본 3대 아침 시장으로 유명한 가쓰우라 아침 시장은 70개 가까운 노점이 열린다. 노점 곳곳에서 판매되는 신선한 해산물과 말린 생선, 그 밖의 특산물과 먹음직스러운 주전부리들은 이곳이 왜 일본 3대 아침 시장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흔히 일본 여행이라 함은 화려한 빌딩 숲과 네온 사인에 둘러싸인 도쿄와 먹는 것으로 시작해 먹는 것으로 끝나는 오사카, 깊은 역사와 전통이 흐르는 교토를 떠올리지만 일본인의 진짜 얼굴과 두터운 장인 의식, 그리고 자연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보고 싶다면 사와라 마을과 라폿포 나메가타 파머스 빌리지, 스도혼케, 그리고 400 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침 시장인 가쓰우라 시장까지 둘러보는 힐링 여행이 제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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