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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land

위스키 여행

스코틀랜드

유럽 > 스코틀랜드

발행 2022년 09월 호

스코틀랜드 하면 어떤 이는 골프를, 어떤 이는 하일랜드의 대자연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에디터의 머릿속엔 늘 스코틀랜드 하면 스카치위스키가 각인되어 있다. 스코틀랜드 지역의 공기와 습도,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한 잔의 위스키가 여행의 ‘맛’을 돋워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은 스페이사이드에서 하일랜드까지 위스키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오직 위스키의, 위스키에 의한, 위스키를 위한 여행의 기록들.
연못에 오리가 노니는 글렌알라키 증류소의 평화로운 풍경.

스페이사이드에 뭐가 있나면요

스페이사이드에 간다고 하자 누군가는 스코틀랜드에 가냐고 물었고, 누군가는 하일랜드에 가냐고 물었다. 사실 둘 다 맞는 말이다. 엄밀히 말해 스페이사이드는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북동쪽 스페이 강 주변 지역이다. 물이 풍부하고 토양은 비옥하며 기후는 보리 재배에 적합해 수많은 증류소가 이 지역에서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스코틀랜드 증류소의 절반가량이 스페이사이드에 밀집돼 있다.
한때 위스키를 나르던 아벨라워 기차역은 관광안내소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꽃과 과일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싱글 몰트 스카치위스키를 좋아한다. 스페이사이드를 여행의 목적지로 삼은 이유도 순전히 위스키 취향 때문이다. 여기서 싱글 몰트는 몰팅한 보리를 원료로 ‘단일’ 증류소에서 만든 위스키를 말하는데, 싱글 몰트 스카치위스키는 하일랜드, 스페이사이드, 로우랜드, 아일라, 캠든타운에서 생산되며 지역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다. 스페이사이드에서 만든 싱글 몰트 스카치위스키는 증류소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과일 향이나 꿀 향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다.
스페이사이드 싱글 몰트 스카치위스키를 마실 때마다 어떻게 증류하기에 이토록 향기로운지, 위스키가 캐스크에서 고이 잠든 숙성 창고의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이 나를 재촉했다. 마침 런던 여행 계획이 잡힌 것도 한몫했다. 서울에서 스코틀랜드까지는 직항이 없지만, 런던에서 스페이사이드의 관문인 인버네스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반 거리다. 고민은 항공료를 올릴 뿐, 냉큼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하지만 때는 코시국. 유럽의 항공사들은 예고도 없이 파업을 했고, 일정이 취소되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며 비행기에 올랐다. 무사히 떠나는가 싶어 안도하는 찰나, 아벨라워 증류소로부터 스텝 부족으로 투어가 취소됐다는 메일을 받았다. 스코틀랜드 위스키 여행은 ‘재잘거리는 개천의 입구’라는 의미를 품은 ‘아벨라워(Aberlour)’에서 시작하려고 했건만 아쉬움이 앞섰다.
아벨라워 마을 산책 중 마주친 동네 위스키 상점.

서운한 마음을 스페이 강과 합류하는 라우라 천이 흐르는 천변의 아벨라워 마을 산책으로 달랬다. 폭신한 잔디밭을 가로지르자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천변 산책로가 펼쳐졌다. 세차게 흐르는 깨끗한 물을 보니 왜 스페이 강 유역에 증류소가 많은지 알 것 같았다. 마을 골목을 걷다가 위스키숍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다. 가게는 아담했지만, 스페이사이드에서 생산된 위스키를 두루 갖추고 있어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웠다.
마을 산책 후엔 설레는 마음으로 글렌알라키(Glen Allachie) 증류소를 찾았다. 글렌알라키는 50년 경력의 몰트 마스터 디스틸러 빌리 워커가 이끌며 급부상한 증류소다. 빌리 워커는 2017년 글렌알라키를 인수해 2018년 첫 위스키를 출시하기까지 위스키 개발을 위해 16개 창고에 5만 개가 넘는 캐스크를 샘플링했다고 한다. 글렌알라키 증류소 투어를 맡은 마리아는 몰팅(Malting)부터 매싱(Mashing), 발효(Fermentation), 증류(Distillation), 숙성(Maturation)까지 위스키 제조 공정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몰팅이니 매싱이니 하는 용어만 들으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증류소에서 워시백(Washback)이라는 커다란 통에서 발효 중인 맥아즙의 냄새를 맡아보고 거대한 주전자 모양의 긴 증류기를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며 맛볼 수 있는 귀한 경험이 아닐까.
글렌알라키 증류소 투어의 꽃인 증류실 내부.

증류소를 구석구석 둘러본 후 글렌알라키 8년, 12년, 15년산을 비교 시음했다. 지금까지 마셔본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와는 다른 맛이 혀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견과류 향과 캐러멜 향이 코끝을 맴돌면서도 단맛과 짠맛의 조화가 매력적인 글렌알라키 15년산에 흠뻑 반하고 말았다. ‘한 업계에서 기술과 경험을 축적한 장인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내친김에 한 병 사 들고 증류소를 나섰다. 글렌알라키가 고유한 캐릭터의 위스키를 선보이는 증류소로 오래가길 바라며.
위스키를 시음할 때 스포이트로 물을 한 방울 뿌리면 향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 에디터 우지경
  • 사진 우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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