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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raveler

자유와 해방, 그리고 치유의 순간들

영화감독 정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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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2년 08월 호

불교 왕국을 누비며 만나는 이들의 평안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던 어머니의 여정은 순례에 가깝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완성되는 여행이 아닌 묵묵히 걷는 과정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순례. 정형민 감독과 어머니 이춘숙 씨가 두 발로 견뎌온 모든 과정과 참 의미가 담긴 순간들.

포카라 Pokhara

히말라야 트레킹의 시발점이자 배낭여행객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네팔 중부의 도시, 포카라. 네팔어로 호수를 뜻하는 포카리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곳은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북쪽으로는 장엄한 안나푸르나 산군이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페와 호수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여행자들은 보통 페와 호수를 따라 자리 잡은 ‘레이크사이드’에 머문다. 트레킹을 떠나지 않고 레이크사이드에서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내는 장기 여행자들도 많다. 네팔 여행의 장점은 물가가 저렴하다는 점. 단돈 1만원이면 정원과 욕실이 딸린 넓은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을 할 수 있다. 포카라는 1박 2일이나 2박 3일 정도의 짧은 트레킹도 가능하고 히말라야 설산을 바라보며 패러글라이딩도 즐길 수 있는 휴양도시로 네팔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도시다. 솜씨 좋은 한식당도 여러 군데 있어 머물기 좋다. 인도 뉴델리를 경유해서 네팔 카트만두로 들어가면 직항으로 가는 것보다 절반이나 저렴한 항공료로 포카라에 갈 수 있다.
“당시 까그베니 마을과 이어지는 토롱라 패스에서 눈사태가 나 포카라에 발이 묶였어요. 이후 포카라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좀솜으로 건너가 다시 지프차를 타고 오랜 시간을 이동해야 했죠. 험준한 비탈길과 사막을 달려 겨우 까그베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location
Pokhara, Nepal

까그베니 마을 Kagbeni Village

티베트의 불교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대 유적 마을. 까그베니 마을은 힌두교 성지인 묵티나트와 불교 왕국인 로만탕 왕국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대략 2주일이 걸리는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루트에 위치해 있지만 많은 여행자들은 까그베니 마을을 방문하지 않고 지름길을 택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기에 이곳은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을 만날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는 6~7월의 들녘과 장엄한 칼리간디키 강, 히말라야 산군 등이 바로 그것. 마을 주변으로는 먼 옛날 수도승들이 명상을 수행하던 동굴이 즐비하고 수확이 끝난 가을의 풍경은 황량한 화성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네팔에 다녀온 뒤 어머니는 줄곧 까그베니 마을 이야기만 하셨어요. 가족처럼 우리를 환대해주었던 마을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주었던 마을 할머니가 그리웠던 것이지요. 까그베니 마을에서 돌아오던 날 어머니는 언제 또 올 수 있겠냐 물으셨고 저희는 이듬해에 다시 마을에 찾아가 그리운 이들과 상봉할 수 있었죠.”
location
Kagbeni, Nepal

바이칼 호수 Lake Baikal

정형민 감독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꼽은 바이칼 호수. <카일라스 가는 길>의 영화 포스터 속 장소이기도 한 이곳은 3억 년의 세월을 간직한 만큼 태고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바이칼 호수의 여행 적기는 가을로 꼽는데 황금빛 자작나무 숲과 옥빛 호수를 경험할 수 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호수의 알혼 섬까지 미니버스가 운행된다. 정형민 감독과 어머니가 버스를 타고 호수를 방문한 시기는 성수기와는 거리가 먼 4월의 봄이었다. 여전히 호수가 얼어 있던 시기라 아무도 없는 호수 위를 걸었던 경험은 일생일대의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았다. 해가 지면 호수 건너편의 부랴트공화국과 몽골 방향에서 불빛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만 걸어도 닿을 듯하지만 무려 30~40km에 달한다. 어머니는 건너편 몽골까지 가보고 싶어 하며 못내 아쉬워했다.
“알혼 섬을 둘러보았다면 볼쇼예 골로우스트노예 마을에 일주일 정도 머물 것을 권합니다. 마을을 구경하고 돌아오면서 해가 저무는 호숫가에 앉아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어머니와 함께 대화하던 순간과 바이칼 호수에서 만났던 일출, 밤하늘이 지금도 생생해요.”
location
Lake Baikal, Russia

야쿠타트 Yakutat

알래스카 하면 북극이나 혹한의 겨울을 쉽게 떠올리지만 남동 알래스카는 원시의 숲이 끝없이 펼쳐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래, 바다사자, 물개, 곰, 흰머리수리와 같은 수많은 야생동물의 서식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연어 산란지이기도 하다. 남동 알래스카의 최북단 마을 야쿠타트는 전 세계 낚시꾼들의 로망인 곳이다. 이곳에서는 1m가 넘는 넙치를 쉽게 잡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대형 연어도 낚을 수 있다. 마을 주변으로 해안과 숲이 끝없이 펼쳐지지만 어디서든 곰이 출몰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배로 3시간가량을 가면 바다사자들이 지키는 길목을 지나 세계에서 가장 큰 빙하 중 하나인 허버드 빙하를 만날 수 있다. 시애틀을 경유해서 알래스카의 주도인 주노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야쿠타트는 클링깃 원주민의 영토입니다. 지난 2020년부터 남동 알래스카의 클링깃 원주민에 관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어요. 또 하나, 남동 알래스카에 간다면 던전 크랩을 꼭 맛보길 권합니다. 한국식 게찜 요리인데 별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location
Yakutat, Alaska

삐이 Pyay

미얀마는 지금 쿠데타 이후로 여행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지만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사랑하는 곳이자 이춘숙 씨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양곤, 바간, 만달레이, 인레 호수 등 명소를 여행지로 손꼽지만 정형민 감독은 미얀마를 여행한다면 고대 유적을 간직한 조용한 시골 마을 삐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양곤에서 자동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북쪽에 위치한 삐이는 미얀마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이다.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주요 도시와는 달리 한적한 현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교외로 나가면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과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천년이 넘은 불탑과 유적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여행을 하면서 어머니가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은 음식이었어요. 하지만 미얀마 음식만큼은 정말 좋아하셨어요. 삐이 야시장에는 김밥과 비빔밥을 파는 한식당도 있는데요. 음식 솜씨가 제법이랍니다.”
location
Pyay, Myanmar

  • 에디터 김영은
  • 사진 정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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