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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ation

음악의 선율을 따라간 여행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유럽 > 영국

발행 2022년 06월 호

음악이 좋아서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여행자들이 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떠난 여행자는 그 공연 이후 세계가 넓어졌다고 말한다. 어떤 장르든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여행에는 열정이 듬뿍 묻어난다.

뜻밖의 여정이었다. 2018년, 아일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마친 후 글래스톤베리에 가고 싶었지만, 하필 그때가 페스티벌 안식년이라 갈 수 없었다. 글래스톤베리는 농장에서 진행되는 페스티벌이라 자연보호를 위해 5년마다 안식년을 갖는다. 그런데 2019년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2016년 일본 음악 축제 ‘서머소닉 오사카(Summer Sonic Osaka)’에 같이 갔던 대학 동기가 글래스톤베리 동행을 구한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장채영은 그 기회를 덥석 잡았다. 출국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티켓을 구해야 했기에 여행 자금을 단기간에 모으려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력을 다했다.

런던으로 입국해 브라이튼으로 이동 후 코치를 타고 글래스톤베리로 향하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코치 정류소에 도착하니 색색의 반다나를 하거나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침낭과 장화를 들고 줄을 서 있었다. 음악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다는 게 놀라웠다. 글래스톤베리에 도착 후 페스티벌장으로 가려면 낡은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피곤하고 예민한 상태였는데, 버스 기사님이 DJ처럼 “첫 곡은 레그 앤 본 맨(RagʼnʼBone Man)의 휴먼(Human)이야”라는 한마디에 승객들은 모두 환호했고 이미 페스티벌이 시작된 것처럼 기운이 났다. 차창으로 페스티벌장이 점점 가까워지자 다른 나라 정도가 아니라 다른 행성에 온 것만 같았다. 멀리서 보이는 수만 개의 텐트 색깔과 화려한 무대 풍경에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히피>가 생각났다. 매직 버스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책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글래스톤베리는 수십 개의 무대에 수백 팀이 출연한다. 헤드라이너로는 더 킬러스(The Killers), 더큐어(The Cure),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 빌리 아이리시(Billie Eilish) 등 셀 수 없이 많은 뮤지션이 출연했다. 평생의 꿈이었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캠핑존에서 사랑하는 테임 임팔라(Tame Impala)의 리허설을 모닝콜로 듣고 일어나니, 비로소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앞에 있던 할머니는 오렌지색 스타킹을 신고 춤을 추었고, 옆에는 할아버지가 저글링을 하며 몸을 흔들었고, 그 옆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모든 춤에 삶이 있었다. 기대했던 케미컬 브라더스, 로린 힐(Lauryn Hill)의 무대는 실제로도 너무 좋았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인 여성 DJ 페기 구(Peggy Gou)의 무대는 관객들이 한국어 가사를 떼창하는 모습에 더욱 인상 깊었다.

꿈 하나를 이루고 나니, 음악 여행 1부를 끝낸 느낌과 2부가 시작될 느낌이 들었다. 글래스톤베리를 기점으로 새로운 20대의 장막을 올리게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글래스톤베리를 다녀온 6개월 뒤, 2020년에 글래스톤베리 메인부커 마틴 엘본이 함께 기획한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사무국에 입사했다. <귀로 숨을 쉽니다>라는 에세이도 냈다. 원래는 글래스톤베리를 다녀온 페스티벌 고어들을 인터뷰하는 책을 출판사와 준비하고 있었는데, 페스티벌 회사에 취직이 되어 병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팬데믹이 터진 것이다. 꿈을 이뤘다 생각한 곳에서 하루하루 심해지는 뉴스를 보며 좌절을 맛보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마저 삼킬 것 같았다. 음악은 죄가 없는데. 다시 한번 자신의 발걸음을 믿었고, 힘을 내어 4년 동안 음악으로 덕업일치하기까지 썼던 글을 모아 음악 여행 에세이 <귀로 숨을 쉽니다>를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출판했다. 에세이 중간중간 다녀왔던 더블린 포비든 프루트 뮤직 페스티벌, 파리 피치포크 뮤직 페스티벌,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등 페스티벌 여행기를 담았다. 팬데믹 덕분에 탄생한 책이다. 어쩌면 시대가 그녀를 살리기도 한 것이다.

장채영 Lucia Chayoung Jang

- 콘텐츠 기획자
- 음악·여행 에세이스트
- 1인 출판사 ‘일곱개의 숲’ 대표
- 음악 여행 에세이 <귀로 숨을 쉽니다>
- 인터뷰 에세이집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들처럼> 저자

  • 에디터 우지경
  • 사진 장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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