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 스페인 > 세비야
발행 2022년 06월 호
멀리서부터 울려 퍼지는 관악대의 북소리, 발 디딜 틈 없이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괴기스러운 고깔로 얼굴을 가린 채 줄지어 걷는 행렬, 그 뒤로 큰 단상 위에 올려진 성모마리아상까지. 전 세계인이 모여드는 세비야의 성스러운 부활절 축제, 세마나 산타를 만났다.
안달루시아의 심장부인 세비야는 관광객으로부터 ‘가장 스페인스럽다’는 말을 들을 만큼 로컬 특유의 정취가 묻어나는 곳이다. 1년 내내 부족함 없이 내리쬐는 햇살, 온화한 날씨만큼 여유롭고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대항해시대의 중심에서 세계를 호령하던 그 시절의 화려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유럽 3대 성당 중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은 건축 당시 “완성된 대성당을 본 이들이 우리를 미쳤다고 생각할 만큼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만들자”라고 했던 성직자의 말처럼 무려 100여 년에 걸쳐 완공된 이후 지금도 세비야를 찾는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전하고 있다. 세비야 대성당뿐 아니라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히는 스페인 광장과 스페인 역사의 시작이자 과거를 그대로 간직한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 알카사르 등도 세비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소다.
세비야의 센트로(시내) 지구는 걸었을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난다. 마치 오래전 언젠가로부터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도시 곳곳이 시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비야의 센트로 지구는 문화제 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건물의 외관을 마음대로 고칠 수 없도록 하였고 건물의 높이 역시 세비야 대성당보다 높게 지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센트로 지구는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시간의 흔적이 남긴 아름다운 모습을 지금까지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세비야 사람들의 보수적인 성향은 건물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는 데도 큰 역할을 했는데, 집시들의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을 음악에 담은 플라멩코와 스페인의 명물인 투우 등을 현재까지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또한 스페인을 대표하는 전통 축제인 세비야의 부활절 행사 ‘세마나 산타’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성스러운 세마나 산타를 직관하기 위해 해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세비야로 향한다.
세비야의 센트로(시내) 지구는 걸었을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난다. 마치 오래전 언젠가로부터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도시 곳곳이 시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비야의 센트로 지구는 문화제 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건물의 외관을 마음대로 고칠 수 없도록 하였고 건물의 높이 역시 세비야 대성당보다 높게 지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센트로 지구는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시간의 흔적이 남긴 아름다운 모습을 지금까지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세비야 사람들의 보수적인 성향은 건물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는 데도 큰 역할을 했는데, 집시들의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을 음악에 담은 플라멩코와 스페인의 명물인 투우 등을 현재까지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또한 스페인을 대표하는 전통 축제인 세비야의 부활절 행사 ‘세마나 산타’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성스러운 세마나 산타를 직관하기 위해 해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세비야로 향한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빛나는 세비야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던 어느 봄날, 골목 입구에서부터 창문을 두드리는 북소리와 음악 소리가 들리고 이내 희한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줄지어 걷는다. 그 수는 수십 명을 넘어 곧 수백 명, 수천 명으로 늘어나고 행렬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길을 건너려 할 때 행렬 속 인파와 경찰까지 나서서 걸음을 막는다. 돌아서 가야겠다 싶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이미 내 뒤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차버렸고 그 자리에 꼼짝없이 갇혔다. 행렬이 다 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드디어 세비야의 세마나 산타(Semana Santa, 성주간)가 시작된 것이다.
가톨릭 신자가 전체 인구의 94%에 달하는 스페인에서는 매년 부활절을 즈음하여 세마나 산타 축제가 전국 각지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그중에서도 세비야에서 열리는 세마나 산타는 스페인 3대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유명하다. 세마나 산타는 ‘성스러운 주간’이라는 뜻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축제다.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의 어머니는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세비야의 세마나 산타를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였다.
세마나 산타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행렬에 있다. 모든 성당과 교회에 있는 예수상이나 마리아상을 ‘파소(Paso)’라는 거대한 가마에 올리고 신도들이 직접 어깨에 멘 후 세비야 대성당 앞까지 행진을 하는데 일주일 동안 매일 적게는 4개, 많게는 11개의 행렬이 이어진다. 행렬의 맨 앞에는 교구를 상징하는 깃발을 든 신도들과 관악대가 줄지어 걷고 그 뒤로 뾰족한 고깔을 쓴 채 온몸을 천으로 가린 사람들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화려한 꽃과 장식으로 꾸민 행렬의 메인 파소가 지나가고, 다시 관악대가 마지막을 장식하며 행렬은 끝이 난다. 신도 수가 적은 교구는 500명 안팎의 신도가 참여하지만 신도 수가 많은 행렬은 무려 4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걷기도 한다. 심지어 행렬은 낮에 시작해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나는데 그 시간만 해도 족히 6시간은 넘으니, 단순히 걷는 행위를 넘어선 일종의 고행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가톨릭 신자가 전체 인구의 94%에 달하는 스페인에서는 매년 부활절을 즈음하여 세마나 산타 축제가 전국 각지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그중에서도 세비야에서 열리는 세마나 산타는 스페인 3대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유명하다. 세마나 산타는 ‘성스러운 주간’이라는 뜻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축제다.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의 어머니는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세비야의 세마나 산타를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였다.
세마나 산타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행렬에 있다. 모든 성당과 교회에 있는 예수상이나 마리아상을 ‘파소(Paso)’라는 거대한 가마에 올리고 신도들이 직접 어깨에 멘 후 세비야 대성당 앞까지 행진을 하는데 일주일 동안 매일 적게는 4개, 많게는 11개의 행렬이 이어진다. 행렬의 맨 앞에는 교구를 상징하는 깃발을 든 신도들과 관악대가 줄지어 걷고 그 뒤로 뾰족한 고깔을 쓴 채 온몸을 천으로 가린 사람들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화려한 꽃과 장식으로 꾸민 행렬의 메인 파소가 지나가고, 다시 관악대가 마지막을 장식하며 행렬은 끝이 난다. 신도 수가 적은 교구는 500명 안팎의 신도가 참여하지만 신도 수가 많은 행렬은 무려 4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걷기도 한다. 심지어 행렬은 낮에 시작해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나는데 그 시간만 해도 족히 6시간은 넘으니, 단순히 걷는 행위를 넘어선 일종의 고행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행렬에 참가한 사람들의 희한한 복장도 눈에 띈다. 높이 솟은 고깔모자가 달린 마스크를 쓰고 온몸을 가린 채 앞만 겨우 볼 수 있도록 눈만 뚫려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운데, 이들을 가리켜 ‘나사레노(Nazareno)’라 칭한다. 이 행렬을 처음 만나는 관광객이라면 다소 괴기스러운 그들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다. 손에는 긴 막대 모양의 초를 지팡이처럼 짚으며 걸음을 옮기고 고깔을 쓴 채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들이 뒤를 따른다. 축제가 처음 생겼을 때는 남자들만 참여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나사레노가 쓴 고깔은 높이 솟은 뿔로 인해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목이 뒤로 꺾여버리기 때문에 자연스레 고개를 앞으로 숙이면서 신을 향해 낮은 자세를 취하게 된다. 온몸을 뒤덮은 옷은 신분을 감추기 위한 복장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 당시에는 이단으로 여겨졌기에 자기의 신분을 당당히 드러낼 수 없어 온몸을 천으로 가린 데서 유래되었다. 고깔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검은색 실을 엮어 머리부터 목덜미만 가린 모습도 더러 눈에 띄었다. 복식의 유래나 뜻이 어떻든 태양의 나라 스페인, 거기서도 가장 더운 지방인 세비야의 무더위는 보통 고역이 아닐 텐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행렬을 이어갔다.
한 행렬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른 길에서 진행되는 행렬을 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 두 명의 어린 나사레노(호세 가르시아, 마누엘 안토니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앳된 얼굴의 소년들은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의 평온을 기원하기 위해 축제에 참여했다며 사람들 모두 각자의 희망을 기리기 위해 행사에 동참했을 거라고 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두꺼운 가운과 고깔로 몸을 휘감고 하루 종일 걷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린 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해온 일이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고 했다. 또 더위를 참는 것도, 힘든일을 인내하고 견디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자신들의 역할은 쉬운 편이고 관악대나 파소를 든 이들이 훨씬 더 힘들 거라며 오히려 이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멋진 말을 남기기도 했다. 두 명의 어린 나사레노와 짧은 이야기를 나눈 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갓 14~15살 정도 된 소년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인데도 그것을 당연하고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만드는 믿음은 대체 무엇인지, 또 그런 믿음이 어떻게 그들에게 자리 잡은 것인지 궁금하면서 동시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껏 나는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신념이라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 자체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한 행렬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른 길에서 진행되는 행렬을 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 두 명의 어린 나사레노(호세 가르시아, 마누엘 안토니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앳된 얼굴의 소년들은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의 평온을 기원하기 위해 축제에 참여했다며 사람들 모두 각자의 희망을 기리기 위해 행사에 동참했을 거라고 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두꺼운 가운과 고깔로 몸을 휘감고 하루 종일 걷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린 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해온 일이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고 했다. 또 더위를 참는 것도, 힘든일을 인내하고 견디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자신들의 역할은 쉬운 편이고 관악대나 파소를 든 이들이 훨씬 더 힘들 거라며 오히려 이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멋진 말을 남기기도 했다. 두 명의 어린 나사레노와 짧은 이야기를 나눈 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갓 14~15살 정도 된 소년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인데도 그것을 당연하고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만드는 믿음은 대체 무엇인지, 또 그런 믿음이 어떻게 그들에게 자리 잡은 것인지 궁금하면서 동시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껏 나는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신념이라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 자체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길었던 행렬이 또 한 차례 지난 후 다른 곳을 지나는 행렬을 보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행렬은 오후 2시 이후부터 새벽까지, 일주일 내내 진행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행렬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시청에서 제공하는 시간표와 지도가 있지만 온통 스페인어뿐이니 오히려 그게 더 어렵게 느껴진다. 차라리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방향만 잘 따라가다 보면 금세 다른 행렬을 만날 수 있다. 행렬을 주관하는 것은 코프라디아스(Cofradias)라는 이들로, 예수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를 향한 믿음과 헌신으로 모인 ‘종교적 형제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각 교회에 소속된 청년회 혹은 부녀회쯤 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 년 동안이나 각자의 역할에 맞춰 행렬을 준비한다. 그들이 소속된 형제단의 힘을 자연스레 드러내고 신앙을 뽐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매우 가치 있게 여긴다. 행렬이 진행되는 날의 날씨도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비가 드물기로 유명한 세비야지만 매년 세마나 산타 기간이 되면 얄궂게도 비가 잦아지는데 그런 날에는 행사가 취소되기도 한다. 비 때문에 행렬이 취소된 교구에서는 1년을 꼬박 준비했음에도 진행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불평은 하지 않는다. 또 다음 1년을 열심히 준비해서 다음 해에는 더 멋진 행렬을 만들어내자는 다짐을 할 뿐이다. 이렇듯 세마나 산타 행사에 진심인 사람들인데, 약 2년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행사가 열리지 못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짐작이 간다. 팬데믹을 이겨내고 3년 만에 다시 열린 이번 축제는 그간의 아쉬움을 달래듯 어느 때보다 성대하고 화려했다.
행렬은 각 교회나 성당에서 출발해 세비야 대성당으로 향한다. 거리가 가까운 곳도 있지만 강 건너 멀리 있는 교회나 성당도 있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행렬이 최소 6시간 이상을 걷는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객뿐 아니라 세비야 사람들 역시 오랜 시간 행렬을 기다려야 한다. 특정한 장소가 마련된 행사가 아니므로 거리에서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는데,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다림을 해결한다. 접이식 의자를 들고 다니기도 하고 거리에 주저앉기도 한다. 또 아이들은 아빠의 등이나 어깨에 올라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온종일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한자리에서 1시간 이상 서 있는 게 보통 고된 일이 아니라는 걸 몸소 깨닫고는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대성당 앞으로 가는 것이었다. 어차피 모든 행렬은 대성당을 지난다고 했으니 그곳에서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대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세비야 시에서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대성당 앞 메인 도로에는 세마나 산타 기간 동안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높은 가벽이 들어서 있었고, 그 안에 무대를 설치해 의자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입장권은 하루 단위로 판매하고, 맨 앞자리의 가격은 무려 1000유로에 육박한다. 그렇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앞자리는 이미 만석이다. 아쉬움을 삼키며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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