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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raveler

낭만가객을 꿈꾸는 거리의 버스커

박기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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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2년 05월 호

단돈 300만원과 기타, 작은 앰프 하나만 들고 런던행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80일 동안 유럽 11개국을 돌며 발길 닿는 곳마다 멈추어 한국 노래를 불렀다. 현란한 비트와 퍼포먼스로 채워진 요즘 스타일의 K-팝이 아니었다.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여수 밤바다’ 등 서정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한국의 명곡이 유럽 거리에서 그의 목소리를 통해 울려 퍼졌다. 거리 위의 버스커, 박기명 작가의 이야기다.

박기명 작가는 한마디로 자신을 ‘노래하는 엔지니어’라 소개한다. 하지만 그건 너무 겸손한 표현이다. 평소에는 엔지니어로 제품 디자인 및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유튜브 채널 ‘쏭지니어 기명’을 통해 외국인과의 랜덤 채팅으로 오래된 한국 가요를 부르고 있다. 작년에는 대기업을 떠나 스타트업에 도전했고 올해는 <배낭 대신 기타 메고 떠납니다>라는 버스킹 여행기를 담은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이 시대의 ‘N잡러’다.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란 늘 가슴 뛰게 만드는 삶의 원동력이다.

“유럽 버스킹에서 한국 노래가 들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항상 저를 설레게 했어요.” 늘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단돈 300만원을 가지고 80일간의 유럽 버스킹 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곧 자신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뮤지션으로 살고 싶은지, 아니면 엔지니어로서의 길을 가야 하는지 고민하던 때였다. 버스킹을 통해 진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 과감히 여행을 시작한 것. 해외 버스킹 문화는 한국과는 달리 라이선스를 발급받고 공연하는 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길거리 공연가를 엄연한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박기명 작가는 이러한 문화를 이해하고 차근차근 여행을 준비했다. 적은 예산이라 숙소는 카우치서핑을 이용했다. 처음에는 어려운 시도였지만 차차 호스트들의 좋은 리뷰로 레퍼런스가 쌓여가면서 초대가 이어졌다. 덕분에 다양한 현지인을 만나 소통할 수 있었다.
“마이크도 없이 기타 하나와 작은 앰프 하나만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어요. 그렇다 보니 목소리가 잘 울릴 수 있는 공간을 물색했죠. 예를 들면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어부의 요새’라는 곳이 그랬어요. 마드리드, 파리, 베네치아 같은 유명 관광지에서는 제지를 당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 와중에 몰래 공연하기도 했고요.(웃음)” 첫 버스킹은 런던 브리지 근처의 한 버스 정류장이었다. 외국이니 자연스레 팝송을 불렀는데 웬걸. 제 갈 길 가기 바쁜 사람들로 인해 처참한 실패를 겪었다. 착잡한 심정으로 숙소에 돌아왔는데 호스트가 ‘영어보다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부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이후 그는 용기를 얻어 당당히 한국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故 김광석의 노래를 많이 불렀어요. 한국어 발음이 아름답다고 칭찬하더라고요.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음악은 서로를 이해하는 도구예요. 신나는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이 와서 춤을 추곤 했죠. 맑은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고사리 같은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데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그 손으로 1유로를 주고 가는 모습은 1000만원보다도 더 소중했던 추억이에요.”

박기명 작가는 국내든 해외든 악기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을 강력히 추천했다. 여행이란 인생을 바꾸고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나가는 아주 중요한 이벤트라는 말도 덧붙였다. 특히 버스킹 여행은 만족스러운 여행뿐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선사하는 선물과도 같다며 도전하는 이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낼 것을 당부했다. 자신이 80일간의 버스킹 여행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버스킹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가 경험했던 유럽에서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주었다.

  • 에디터 김영은
  • 사진 박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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