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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된 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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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12월 호

여행의 설렘은 때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걸까. 주저 없이 떠난 여행길에서 생긴 바보 같은 에피소드. 당시엔 황당했지만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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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가 사라진 밤

울산에 지인 하나 없이 덜컥 취직해버린 친구를 보러 간 날. 울산현대백화점 위 관람차로 시작한 여정의 끝은 멋진 야경으로 유명한 십리대숲이었다. 키 큰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에는 싸구려 트리 조명이 빛나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하늘을 가득 채운 조명은 오묘한 황홀감과 함께 환상의 나라로 떠나온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은하수 길’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걸어왔던 길 먼 곳에서부터 ‘탁, 탁,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마치 공포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그때, 평소라면 인식하지 못했을 불 꺼지는 소리도 당시 내 고막에는 북 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나와 친구는 눈을 마주치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우리가 들어왔던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달리면서 소리를 지르다가도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마주 보며 미친 듯이 웃기도 했다. 있는 힘껏 달려 진이 다 빠져버리는 바람에 터덜터덜 여행을 마무리했던 2019년의 여름. 어른이 되어서도 바보같이 단순한 감정에 휘둘렸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픽디자이너 이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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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무모했던 첫 해외여행

5년 전 대학교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중 충동적으로 오사카행 티켓을 끊었다. 인생 첫 해외여행이었던 오사카에서의 3박 4일은 생각보다 훨씬 멋졌다. 여정에서 마주친 인연들의 따스함, 위풍당당한 기세의 오사카 성과 랜드마크 대관람차, 서늘하고도 축축했던 도톤보리 강의 아침 공기. 오사카의 풍경을 눈에 담기에 바빠 타코야키로 주린 배를 대충 채우다가 일본 남자애들이 말을 걸기에 급히 도망쳤던 일까지. 결국 마지막 날 밤엔 떠나기 전 패기 넘치는 스무 살짜리 대학생은 어디 가고 홀로 떠난 여행에서 진이 쑥 빠진 데친 시금치만 남았더랬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비행기 시간에 맞춰 알람을 설정하고는 곧장 딥 슬립. 너무 피곤했던 탓일까, 아님 첫 해외여행이라 미숙했던 탓일까. 시간 계산을 잘못한 나는 수속 시간을 한참 넘기고 코앞에서 떠나는 비행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국제 미아가 되는 건가 싶었지만 다행히 무사히 귀국해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듯 글을 쓰고 있다. 아찔한 경험이었지만 누군가 여행도 실수도 모두 없던 일로 하겠냐고 한다면 절대로 거절이다. 그건 아마 스물다섯, 지금의 내가 아직도 5년 전 그 여행의 기억에 현재의 행복을 조금쯤 기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사저널> 객원기자 장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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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짝지근한 포르투에서의 어느 날

2017년 친구와 함께 훌쩍 떠난 유럽 여행,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차를 빌려 마드리드, 그라나다, 론다, 코르도바, 세비야까지 찍고 포르투갈로 넘어갔다. 스페인에서 지낸 3개월 내내 함께했던 스페인어와는 작별을 고했다. 비슷한 듯 낯선 포르투갈어가 들리는 포르투를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와이너리 투어 때문이었다. 한때 호주에 있는 와인 농장으로 훌쩍 떠나고 싶을 만큼 와인이라는 액체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포르투의 다양한 유명 와이너리 중에서도 우리의 선택은 환상적인 포르투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테일러 와이너리. 큼지막한 배럴들이 늘어선 와이너리를 지나, 쌀쌀한 지하 공간으로 들어가니 테이스팅 공간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먹어본 포르투 와인의 맛이란. 자그마한 잔에 반도 안 되는 테이스팅 와인이 너무 아쉬워 염치 불구하고 “한 잔 더 주세요!(Mais um copo, por favor!)”를 외쳤다. 이미 여행의 흥취가 오를 대로 올라버린 우리는 포르투 유명 와이너리 삼대장의 문을 전부 두드렸다. 그러다 보니 바닥의 돌 블록과 마을의 고즈넉한 담벼락,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회전목마의 불빛이 한데 뒤섞여 보이는 건 한순간. 분위기와 와인에 취해 휘청휘청 걷던 그날 밤의 포르투는 어찌나 예쁘던지. 택시조차 끊긴 시간,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춥고 멀었지만 지금도 포르투를 떠올리면 일렁이는 가로등의 불빛과 달짝지근한 포트 와인의 맛이 생각난다.
-국제회의 기획자 조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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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송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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