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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따라가는 대구 건축 문화 기행

아시아 > 대한민국 > 대구

발행 2021년 11월 호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흔적을 간직한 건축물들을 한 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곳, 대구. 조선시대부터 서양 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근대,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구가 거쳐온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본 건축 문화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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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브릭로드

1900년대 서양 건축가와 동방 건축 기술자가 만들어낸 대구 근대 건축 투어 코스로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등 서양식 건축의 다양한 특징과 함께 동양의 기술이 조화된 새로운 건축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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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사제를 양성하는 곳, 성유스티노 신학교

대구에 신의 사제를 배출하는 곳을 짓겠다는 드망주 주교의 뜻에 따라 세워진 성유스티노 신학교는 한국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추기경이 졸업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청의 초대 주교장인 플로리안 드망즈 주교가 대구에 신학교를 짓기 위해 기금을 모집하던 중, 상하이에서 익명의 누군가가 거액의 돈을 후원하는 대신 학교의 이름을 성유스티노라고 하는 조건을 달았다. 고딕 양식과 로코코 양식이 조화를 이룬 장식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이곳은 대구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지붕에 툭 튀어나온 조그마한 창문과 1층의 아치 형태로 설계된 복도 등에서 우아함을 추구하는 로코코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성유스티노 신학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성당의 좌석 배치다. 일반적인 성당의 좌석은 제단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놓여 있는데, 성유스티노 신학교의 성당에서는 중앙이 아닌 양옆 벽을 따라 배치돼 있다. 신학교의 학생은 사제의 본분에 맞게 신의 옆에서 보좌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location
대구시 중구 명륜로12길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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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 계성중학교

현재 아담스관, 맥퍼슨관, 핸더슨관 등 3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계성중학교는 처음에는 이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학교를 설립한 아담스 선교사는 1906년 자신의 사택을 계성학교로 사용했지만 곧 제대로 된 학교 건물의 필요성을 느껴 미국 선교부에 의뢰해 건축비를 지원받게 된다. 그가 직접 설계해 1908년에 완성한 아담스관이 바로 지금의 계성중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창호 등 내부 재료는 모두 미국에서 공수했고, 중국 화공과 일본인 목수가 참여했다. 가운데 튀어나온 종탑, 초소처럼 생긴 위쪽 창문, 기와로 만든 지붕의 모습은 한옥의 느낌을 내며, 붉은색 벽돌과 서양식 굴뚝을 더해 동서양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모습을 자랑한다. 건물을 올려다보면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라는 학교의 교훈이 한자와 한글로 적혀 있는 것도 특징이다. 좌측의 맥퍼슨관은 2대 교장이었던 라이너 선교사의 뜻으로 1914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미국의 맥퍼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맥퍼슨관이라고 이름 붙였고, 이곳 역시 한옥과 양옥이 절충된 건축 스타일이 눈길을 끈다. 1918년에 완공된 중앙의 핸더슨관은 4대 교장을 지냈던 핸더슨이 지은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건물로, 계성중학교에서 가장 나중에 세워진 건물이다. 양옆으로 세워진 첨탑에서 고딕 양식을, 건물의 윗부분이 평평한 데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주소 대구시 중구 달성로 35 전화번호 053-232-8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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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가톨릭의 성지, 성모당

웅장한 모습이 압권인 성모당에는 드망주 주교의 숭고한 뜻이 담겨 있다. 가톨릭 신자는 많으나 관련 시설이 전무한 대구에 내려온 그는 성모 마리아에게 세 가지 소원이 이루어지면 성모당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이 세 가지 소원에 따라 지어진 곳이 바로 주교관, 성유스티노 신학교, 계산성당이다. 세 곳이 모두 지어지자 드망주 주교는 가톨릭 성지로 유명한 프랑스 루르드의 동굴의 모습을 본떠 이곳 성모당을 완성했다. 성모당 동굴 위에는 ‘1911 EX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이라고 쓰여 있는데, 1911년은 대구교구가 처음 생긴 해, 1918년은 드망즈 주교의 세 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 해다. 중앙에 적힌 라틴어는 ‘원죄 없이 잉태한 성모님께 바치는 약속에 의해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회색 벽돌과 붉은색 벽돌이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중앙에 동굴이 아치형으로 마무리된 모습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굴 안에는 성모 마리아상과 함께 그녀를 향해 기도하는 한 소녀의 조각상이 놓여 있다. 프랑스 루르드 동굴에서 베르나데트라는 소녀 앞에 성모 마리아가 19번이나 현신했다는 이야기를 대구에도 그대로 옮겨놓은 것. 대구 가톨릭의 성지인 성모당 앞에는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면 미사를 드리는 신도들로 가득하다.
location
대구시 중구 남산로4길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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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화교들의 아지트, 화교협회

건축의 발달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에 따라 각기 다르게 이루어진다. 예부터 나무가 많았던 우리나라는 한옥집을 지었고, 벽돌을 만들기에 적합한 토양이 발달한 중국은 주로 벽돌집을 지었다. 20세기에 들어서 한국의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외국인이 한국에 터를 잡기 시작했는데, 대구에는 중국인 모문금이 벽돌을 이용한 서양식 건축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지역 부호였던 서병국이 근대식 주택을 짓고자 건축가 모문금에게 의뢰해 1929년에 완공한 것이 바로 이곳, 화교협회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의 균형미를 뽐내는 정방형의 평면 구조를 이루는데, 나무는 금강산에서 벽돌은 평양에서 구워 왔다는 설이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이 건물을 중심으로 대구의 화교 공동체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자 대구 화교협회가 이곳을 매입해 현재는 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지어진 지 9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수려한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로 손꼽힌다.
location
대구시 중구 종로 34
tel
053-255-0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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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가톨릭의 요람, 계산성당

1902년 완성된 계산성당은 대구에서 가장 최초로 만들어진 적벽돌 건물이다. 100년 넘게 꿋꿋이 한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 모습이 완성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876년 프랑스 외방선교단 소속으로 한국에 들어온 로베르 신부는 대구 계산동에 정착한 후 십자 모양의 한옥 형태로 교회를 건축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가 일어나 건물이 모두 불타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다시 새로운 교회 건물을 짓고자 고민하던 때에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한 서상돈 선생이 현 계산성당의 부지를 내주었다고 한다. 로베르 신부가 직접 설계한 이곳은 당시 한국에는 양옥 건축 기술자가 없어 중국인 벽돌공과 일본인 목수가 동원되었다. 이후 1914년 증축 때 완성된 정면의 2개 첨탑은 서상돈 선생과 여신도 한 명이 기증한 것으로, 각각의 세례명을 따 아우구스티노와 젤마나로 불린다. 정면의 장미창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며, 꽃잎 12개는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한다. 고딕 양식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스테인드글라스. 내부에서 더욱 화려함이 돋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예수의 12제자가 그려진 것이 일반적인데, 계산성당에는 이와 함께 조선시대 가톨릭 박해로 인해 순교한 103인의 한국인 성인들 중 일부가 그려져 있다.
location
대구시 중구 서성로 10
tel
053-25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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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INFORMATION

김보록 신부 동상

계산성당 입구에 마련된 정원에는 대구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데 평생을 바쳤던 초대 주임 로베르 신부(1853~1922)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한국식으로 ‘김보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는 대구에 가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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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 위 그림 같은 집, 의료선교박물관

1900년 초반 기독교 선교 활동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해외 선교사들은 푸른 담쟁이 언덕이라는 뜻의 청라언덕에 주택을 짓고 살았다. 초가집만 즐비했던 당시, 선교사들은 이 주변에 병원과 학교를 짓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어져 지금 대구의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 되었다. 당시 선교사 주택은 약 10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스윗즈 주택,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 이렇게 3채만이 남아 청라언덕을 지키고 있다.
스윗즈 주택은 스윗즈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주택으로 지금은 선교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건물 전체를 구성하는 붉은색 벽돌은 중국인 건축가들의 솜씨이고, 내부의 미장은 일본인들의 손을 빌렸다. 다만 지붕이 동양식으로 기와를 사용한 점이 특징적이다.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신기했던 당시 주민들은 주택 주위를 자꾸 기웃거렸고, 이점이 신경 쓰였던 스윗즈 선교사가 자신도 같은 사람임을 표현하기 위해 지붕이라도 동양식으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챔니스 주택은 대구의 나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한 챔니스 선교사가 기거했던 곳이다. 이후에도 의료 분야에 기여한 선교사가 주로 거주했으며, 동산병원 의료원장을 지냈던 마페 선교사가 40년 정도 거주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의료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내부에는 동산병원의 탄생 과정 등이 설명된 전시 자료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상아 청진기 등 당시 사용했던 마취 기구, 주사기 등 다양한 의료 기구가 전시돼 있다.
블레어 주택은 남아 있는 3채의 선교사 주택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그 증거는 건물의 기초에서 드러난다. 나머지 두 채는 대구읍성의 성돌로 기초를 쌓은 것과 달리 블레어 주택은 평범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대구읍성을 허물기 전에 지은 집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 이곳에 최초로 거주했던 블레어 선교사는 계성중학교의 핸더슨관을 지을 때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성경 학교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등 교육 분야에서 공로가 인정돼 현재 이곳은 교육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location
대구시 중구 동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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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윗즈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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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챔니스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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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레어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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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송주영
  • 사진 권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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