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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

카미노 프란세스로의 여정

팬데믹 시국, 다시 이어지는 순례

유럽 > 프랑스

발행 2021년 11월 호

팬데믹으로 끊겼던 산티아고 순례 행렬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순례객들이 프랑스 국경마을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나바라, 카스티야 이 레온, 갈리시아 지방의
크고 작은 마을 205개를 지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묻힌 성 야고보를 참배하는
길을 걷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고 나무 한 그루 없이
지평선까지 뻗은 밀밭을 걸어 해발고도 1100m가 넘는 산들을 넘어야 하는 길이다.
인간의 신앙심이 자연과 합작해 만든 산티아고 순례길 현지에서 전하는 775.3km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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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평원을 건너 이어지는 축복과 회한의 순례길

순례객들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산티아고 순례길(카미노)을 걷는다. 오롯이 자기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말없이 걷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교류하며 함께 먹고 마시느라 여념이 없는 이들도 있다.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이도 있고 3년 전 순례길에서 탈진해 죽은 친구를 기리기 위해 걷는 이도 있다. 그 모든 동기들이 순례객을 프랑스의 국경마을 생장 피에드포르로 불러 모은다. 팬데믹 탓에 썰렁했던 이곳도 서서히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 코로나 백신을 2차 접종까지 마쳤거나 PCR 음성 확인을 받은 뒤 보건 패스 또는 검역 QR코드를 발급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따라야 하지만 순례객들은 이러한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생장 피에드포르를 빠져나와 나폴레옹길 초입에 들어서면 순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걷는다. 처음에는 홀로 걷던 이들도 이내 카미노 친구들이 생겨 함께 걷는다. 지난밤 같은 알베르게(숙소)에서 묵으며 안면을 튼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레 무리를 이룬다. 새 친구들을 만난 기쁨이 가시기 전에 숨이 턱에 차오른다. 순례길 첫 관문인 피레네 산맥을 넘는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어려운 코스다. 등에 7~10kg 가방을 메고 가파른 산길을 8시간 이상 걷기가 만만치 않다. 산길이 해발 1200m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며 끝났는가 싶었는데 산모퉁이를 돌면 새 길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평소 산행을 즐겨 하지 않거나 운동을 소홀히 한 이들은 자기 체력의 한계를 바로 확인한다.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205개 마을을 선으로 잇는 길은 크게 4개로 구분할 수 있다. 첫인상치고는 강력했던 피레네 산맥은 이베리아 반도와 유럽 대륙을 구분하는 지형으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피레네 산맥의 첫인상이 가실 때쯤 메세타 평원을 만난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산이나 언덕이 보이지 않는다. 사방으로 밀밭이 펼쳐지다 지평선에 닿으면 하늘과 만난다. 걷다 멈춰 그 자리에서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면 세상 절반은 하늘이고 나머지 절반은 밀밭이다. 그 생경스러운 아름다움에 취해 길 위에 멈추면 햇빛이 폭포처럼 머리 위로 쏟아진다. 길이 뻗다 얕은 구릉을 만나면 길은 하늘과 만나고 길과 하늘이 닿는 곳을 순례객들은 걸어서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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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성체가 산 위에 남아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면 밀밭과 키 작은 숲으로 이뤄진 너른 평원에 느닷없이 작은 산이 우뚝 솟고 길은 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정상 위에는 또 다른 공중 정원이 자리하고 그 아래로 펼쳐진 평원을 감상하며 길을 내려온다.
평원을 지나면 포도밭이 이어진다. 키 작은 포도나무들이 억세게 뒤틀어지고 자라면서 산고의 열매인 듯 탐스럽고 작은 포도 알갱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포도를 따서 입에 넣으면 단맛과 신맛, 그리고 그 향에 취해 걷는다. 그 포도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스페인 와인이다. 스페인 와인은 순례객들을 두 번 놀라게 한다. 우선 맛이 기가 막히다. 풍미와 향이 짙고 입에 닿는 촉감은 한없이 부드럽다.
더 놀라운 건 가격이다. 와인의 값이 놀랄 정도로 저렴하다. 식사 테이블에는 와인이 음료수처럼 등장한다. 한 병 주문해 절반쯤 마시다 그냥 두고 가는 이들도 많다.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은 로고로뇨에서 며칠 묵으며 리오하 와인을 즐긴다. 포도밭을 지나다 졸리면 포도 향에 취해 오래된 나무 벤치에 누워 스페인 하늘을 보다 잠들기도 한다.
카미노 프란세스 코스 중 카스티야 이 레온을 지나면서 풍경이 일변한다. 지루한 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나무가 울창한 산길로 접어든다.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자 숲은 깊어지고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가 가팔라진다. 한참 걸어 오르다 보면 카미노에서 가장 높은 해발 1611m 고지에 도달한다. 그곳에는 돌무더기 위에 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전 세계 순례객들은 이곳에서 자기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내려놓으며 기도하거나 소원을 빈다. 자기 과오와 회한을 담은 글을 가져와 읽은 뒤 태우기도 한다. 돌무더기 정상 십자가에 손을 짚고 기도하는 늙은 순례객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돌무더기 속에 남편이 술을 끊게 해달라는 소원을 한글로 쓴 돌이 보여 웃음을 짓고 내려왔다.
회한과 소원의 돌무더기를 뒤로하고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숨이 턱에 차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면 산속 비경이 어김없이 나타나고 그 속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을 지난다. 나바로 지역부터 카스티야 이 레온 지역까지 펼쳐진 메세타 평원, 포도밭, 숲속 길이 부드럽고 상냥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면 갈리시아 지방의 산은 근육질의 야성미를 갖췄다. 비 오는 아침 오세브레이로에 닿으면 순례객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발아래 펼쳐진 산속 비경에 빠져 넋을 놓는다. 산들이 겹치면서 울창한 숲과 목초지를 만들고 그 위로 구름이 내려와 숲과 마을을 감싸고 돈다. 그 비경 위에 비가 쏟아진다. 비가 오지만 빛은 충분해 자연은 자신의
모든 색을 뽐내며 빛난다.
갈리시아 지방을 지나면 그 끝에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나온다. 성 야보고 무덤이 있는 곳으로 해마다 전 세계 순례객들이 찾는다. 사리아를 지나면서 갑자기 순례객들이 길에 넘친다. 산티아고까지 100km가량 남은 거리를 걷고자 순례객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카미노 전 코스를 도전하지 못한 이들이 가벼운 가방을 짊어지고 순례 행렬에 합류하거나 애완견을 끌고 마실 나오듯 걷기도 한다. 순례객들은 저마다 개선장군처럼 산티아고에 입성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 광장에서 순례의 마지막을 만끽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다. 눈치 빠른 이나 서쪽 해안까지 더 걷고자 하는 순례객들은 순례확인증을 발부하는 순례자 사무실로 서둘러 움직인다. 대기표를 받고 나서 반나절 이상 기다려야 간신히 인증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마치지만 일부는 서쪽 해안 피니스테라까지 걷는 이들도 있다. 요즘은 해안까지 가는 순례객들이 부쩍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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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최인실
  • 이철현
  • 사진 이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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