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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D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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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의 세계로 이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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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10월 호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발길 닿는 대로 떠나라고, 여행을 부추기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엔딩이
여행의 시작이었던 이야기들을 모았다.

영화엔 없는 또 다른 행복을 찾아서, 영화 <라라랜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열정에 끌린다. 나의 경우 난치병에 걸리고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혼자 극장에서 본 영화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들이 그랬다. 자신만의 연주를 하고 싶은 세바스찬과 배우를 꿈꾸는 미아를 보자 문득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들이 말하는 ‘라라랜드’에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꿈꾸는 사람들의 땅, 미국으로 가고 싶었다.
운 좋게도 유학 간 친구로부터 놀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캘리포니아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현실을 살다 보니 미루는 일들이 많았는데 아프고 나니 과감해진다. 얼마 안 되는 돈을 손에 쥐고는 캐리어에 짐을 꾸렸다. 처음 본 LA의 풍경은 눈을 뜨고 보는 꿈같았다. 야자수와 키가 큰 선인장, 도로 위 형형색색의 자동차들, 핑크빛으로 지는 노을까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할리우드에선 걷기만 해도 그 자체로 드라마가 된다.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상처럼 멈춘 사람들 사이로 화려한 조명이 반짝거리고 노랫소리가 들린다. 바닥에 있는 스타들의 발자국을 찾는 여행객들까지 도시 전체가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그중에서 가장 나를 설레게 한 건 꿈꾸는 사람들의 눈빛이었다. 그곳에는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임그린
디자이너

매 순간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는 거야, 영화 <수영장>

이 영화는 주인공 사요가 치앙마이에 사는 엄마를 만나러 가며 시작된다. 엄마 쿄코는 사요를 떠나 혼자 치앙마이에서 수영장이 딸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큰 파도 없이 고여 있는 수영장의 물처럼 영화는 개인의 삶에 집중하며 잔잔하게 흘러간다. 사회화된 우리들이 봤을 때 자신의 인생을 위해 딸을 떠난 엄마의 모습이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오모리 미카 감독은 지극히 일반적인 생각에 돌을 던진다. 가족 안에서 불행하다면 과연 이를 지속할 이유가 있을까.
딸 사요는 “엄마는 좋아하는 곳이 있으면 바로 어딘가로 떠나버려요. 그것도 아주 즐겁게”라고 이야기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치앙마이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이 나를 자극했다. 수영장이 딸린 호텔을 예약했다. 방해하는 것 하나 없이 잔잔하게 물결이 이는 수영장을 하루 종일 바라보며 왜 쿄코가 수많은 도시 중 치앙마이를 선택했는지 깨달았다. 그곳에는 평온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친절한 사람들이 있고, 쿄코의 선택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 쿄코가, 그리고 수많은 이해관계에 얽혀 자유롭게 살지 못하던 우리들이 꿈꾸던 유토피아임에 틀림없었다.
김의연
여행작가

가끔은 져도 괜찮아,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여행지가 내 엉덩이를 들썩인 게 아니다. 주인공인 줄리아 로버츠의 대사 한 줄이었다. ‘무너지는 건 축복이야(Ruin is the gift).’ 주인공이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할 때 쓴 문장이었지만 삶의 벼랑 끝에 놓여 있던 내겐 나 스스로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었다. 가진 걸 다 내려놓고(지금 생각해보면 가진 것도 없었지만)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도 이 대사를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무너지면 뭐 어때, 다시 세우면 되지.’ 그리고 줄리아 로버츠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의 평화와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용감하게 뚜벅뚜벅 걸었다. 장장 800km를 두 달 넘게 걸었다.
보통 한 달이면 끝나는 여정이었지만 걷기 싫어 이불 속에 콕 박혀 있던 날도, 주저앉아 엉엉 운 날도, 순례자들과 어울려 놀기만 한 날도 있어서 남들보다 2배나 더 오래 걸렸다. 내 이야기의 끝에는 영화처럼 멋진 애인도 없었고 드라마틱한 변화도 없었다. 다만 나는 무너졌었고 다시 일어났다. 그뿐이었다.
최연우
브랜드 마케터

  • 에디터 박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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