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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

INTERVIEW

어느 아드레날린 정키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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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10월 호

남들 다 하는 거엔 관심 없고 본인이 가장 먼저 개척하는 시장에만 재미를 느낀다. 이를테면 프리다이빙을 하다가 국내에 프리다이버가 늘어나자 작살을 가지고 물속으로 들어가 고기를 잡는다. 이러한 그의 여행을 녹인 의류 브랜드 롯지의 김주원 대표를 만나 그가 아니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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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여행 중 식당에서 만난 애슐리와 베트남 호이안
호스텔에서 만난 디에고와 롯지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Q _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A _6년 동안 45개국을 여행한 여행가이자 의류 브랜드 롯지(Lodge)를 운영하고 있는 김주원입니다.

Q _6년 동안 45개국 240개의 도시라니, 피부로 와닿지 않은 숫자인데요. 처음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A _고등학교 3학년 때 세계 지리 과목 선생님을 유독 따랐어요. 그때 처음으로 좋아하는 과목도 생겼고 무언가에 대해서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자습 시간에는 늘 백지에 세계지도를 그릴 만큼 세계를 가슴에 품고 살았죠. 대학에 입학하고 여행을 떠날 기회가 없다가 군 전역 후 인도로 40일간 여행을 갔어요. 부산에서 나고 자라 그런지 주변 사람들은 40일간의 인도 여행을 원대한 꿈인 양 치켜세워줬어요. 저도 대단한 여정을 시작하는 줄 알았죠. 하지만 인도에 도착해보니 우물 안의 개구리였더군요. 적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오랫동안 넓은 세상을 보는 여행자들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세계 여행에 대한 꿈을 안고 부산으로 돌아왔어요.

Q _두 번째 여정은 어디서 시작했나요?
A _호주에 150만원을 들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들어갔어요. 거기서 돈을 벌어서 1년 동안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죠. 대학을 마치고 또다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독일에 8개월 동안 있었어요. 그다음 또 8개월 여행하고. 한국에서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가 여행 중 배웠던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필리핀 모알보알로 떠났어요. 그곳에서 자격증을 얻은 뒤 두 달 동안 강사 생활을 했어요. 그때 제 이름을 걸고 여행 패키지 상품도 만들었죠. 그렇게 번 돈으로 6개월을 여행했고요. 이 모든 시간을 다 합치면 6년이라는 시간이 완성돼요.

Q _매번 그렇게 한국에 발붙일 틈 없이 떠날 만큼
여행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어요?
A _매료되었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생업을 찾는 여행’을 했어요. 머릿속엔 늘 ‘뭘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의문을 품은 채 여행을 떠났죠. 부모님이 고향에서 15년 동안 피자가게를 하셨어요. 솔직히 피자가게가 잘 되진 않았어요. 저 또한 요식업에 뛰어들고 싶은데, 경쟁력이 있는 색다른 아이템을 해외에서 찾아오고 싶었어요. 그렇게 떠난 여행이었는데,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그동안 생각해오던 길만이 정답은 아니었단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제가 가진 잠재적인 능력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Q _당연히 그 능력을 한번에 찾진 못했겠죠.
A _그럼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죠. 프리다이빙이 시작이었어요. 수영도 못하던 제가 여행을 하면서 배운 프리다이빙에 재능이 있던 거예요. 10여 년 전 당시, 국내에 프리다이빙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때였어요. 우리나라
첫 번째 강사한테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그 당시 제가 코리안 레코드를 세웠던 거예요. 태어나 처음으로 남들보다 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거죠. 그때 희열을 처음 맛본 것 같아요. 내가 즐기는 걸 잘할 수 있다는 희열.

Q _그렇게 첫 번째 성취감을 맛봤는데 왜 프리다이빙을 계속하지 않았어요?
A _말씀 드렸다시피 저는 요식업의 꿈이 항상 있었어요. 그 꿈의 시작은 중남미 스타일의 치킨이었어요. 처음 1년 동안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페루에서 먹었던 치킨이 자꾸만 생각나는 거예요. 당시에 제가 생각하는 그 맛을 내는 치킨집이 서울 이태원에 있었는데, 장사도 잘되더라고요. 그렇게 무언의 확신을 가지고 남미로 다시 떠났죠. 가기 전에 자금을 마련하느라 독일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8개월간 일하고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방향으로 치킨을 먹으며 4개월 동안 여행을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애타게 찾던 마지막 종착점인 페루에 도착해서 그 식당을 다시 찾았죠. 근데 2년 전 먹었던 그 맛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빈손으로 돌아오게 됐죠.

Q _치킨 맛이 변했다기보단 여행자의 마음이 변한 게 아니었을까요?
A _그렇죠. 2년 전 여행할 당시 배고픈 백패커이기도 했고 치킨 사업을 한답시고 한국에서 맛있는 치킨을 먹고 다닌 탓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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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다이빙을 배우면, 우주 영화 속 무중력의 공간에서 날아다니는 장면을 공감하며 볼 수 있다.
    이집트, 다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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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에서 자전거를 타고 캠핑할 때다. 인적도 드물고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다는 소식에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다.

Q _목적의식이 뚜렷했던 여행이었잖아요.
심지어 1년이나 투자했고요. 빈손으로 귀국했을 때 상실감 같은 건 없었나요?
A _실망은 했지만, 모든 경험은 다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허무함 같은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어요. 오히려 또다시 다음 생업을 생각해야 했죠. 독일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남미로 떠나기 전, 포르투갈에 잠깐 있었는데, 그때 먹었던 에그타르트가 정말 맛있더라고요. 이것도 한국에서 통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시 머물렀던 에어비앤비에서 가정용 오븐으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도 보고, 유명한 셰프에게 하루 4시간에 약 150만원가량 지불하고 배우기도 했어요. 그래서 귀국하고 나서 중남미 스타일의 치킨은 잊어버리고 에그타르트 국내 시장조사에 나서기 시작했어요. 서울의 한 에그타르트 가게 사장님에게 ‘학생, 취업이나 해’라는 말을 듣고 다시 주저앉긴 했지만 말이에요.

Q _여행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해볼 생각은 없었나요? 이를테면 출판이나 강연 같은. 10년 전만 해도 세계 여행을 하고 온 여행자들이 드물다 보니 책이나 강연으로 사람들에게 인사이트와 영향력을 주곤 했잖아요.
A _저도 그런 여행자들이 무엇으로 먹고사는지 궁금해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여행대학’이라는 커뮤니티를 알게 되고 거기서 여행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대부분 출판이나 강연으로 생계를 유지하더라고요. 그때 치기 어린 마음에 그런 건 좀 지루해 보였어요. 그렇게 서울에 있다 보니 프리다이빙을 하고 싶더라고요. 이집트에서 제게 프리다이빙을 알려준 강사분에게 연락을 했더니 필리핀 모알보알에서 강사 자격증 코스를 따러 오라는 거예요. 통장에 60만원밖에 없었는데. 그때 마침 열린 여행 영상 공모전의 1등 상품이 세부 왕복 비행기 티켓 2장이었어요. 응모해서 당선이 되었고 한 장은 제가, 나머지는 중고 장터에 팔아 여분의 돈을 마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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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샤크베이에서의 로드 트립 중 스피어피싱을 했다. 먹을 만큼만, 먹을 수 있는 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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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1년 동안
    일했던 참치공장에서의 마지막 날. 해방감에 차오른 모습이다.

Q _어쩌면 모든 운이 대표님을 향하고 있었네요.
A _그런가요(웃음)?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남들보다 잘한다고 여겼던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보니 국내에 이미 프리다이빙이 유명세를 타고 있더군요. 초보 강사다 보니 경쟁력이 떨어졌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온 필리핀 모알보알인데 이렇게 돌아갈 순 없었어요. 머리를 썼어요. 남들이 대부분 프리다이빙 교육만 할 때 프리다이빙을 활용한 여행 패키지 상품을 만든 거죠. 프리다이빙 교육을 받고 나서 하루는 계곡에서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캐녀닝을, 또 하루는 고래상어와 함께 수영하는 투어 상품이었어요. 영상을 만들어 페이스북에 홍보하기 시작하고 일주일 만에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꽤 괜찮았어요. 그 상품으로 두 달 동안 돈을 벌고 6개월을 여행하고, 통장에 잔고가 비면 다시 필리핀으로 가
두 달 동안 돈을 벌고 또 여행을 하고. 그 여행 상품은 당시 저의 생업이었어요.

Q _프리다이빙으로 인해 또 다른 성취감을 맛보게 된 거군요.
A _맞아요. 처음으로 기획자로서 성공을 맛본 프로젝트였어요. 사실 전공이 마케팅이거든요. 제가 기획한 일이 시장에 던져졌을 때 난생처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거예요. 이후에도 역시 허투루 여행하지 않았어요. 인도에서는 2개월간 요가를 수련했고 미국에서는 스카이다이빙 자격증을 수료하는 등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하면서 여행을 해왔어요.

Q _그렇게 찾다 찾다가 의류 브랜드 롯지를 론칭하게 된 건가요?
A _모알보알에서 여행 상품을 기획했던 것처럼 뭔가 하나를 잘 만들어 오래오래 하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옷이었고요.

Q _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펀딩을 받아 론칭을 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A _와디즈가 오픈한 지 1년 정도 됐을 무렵이었어요. 펀딩은 재고에 대한 부담과 리스크 없이 의류 브랜드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죠. 모알보알에서 여행 상품이 일주일 만에 매진됐을 때처럼 마케팅과 기획 능력을 의류에도 발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두 달 동안 원단만 만지고 다니며 옷을 만드는 방법을 어깨너머로 배우게 됐죠. 그렇게 처음 출시한 제품이 ‘고고팬츠’예요. 2주 동안 5000만원, 앵콜펀딩으로 이뤄진 2주 동안 또 5000만원, 한 달 동안
총 1억원을 펀딩으로 모을 수 있었어요. 반응이 꽤 좋았죠.
사실 처음 시작할 땐 제가 수에 약해서 순이익이 얼마고 어떻게 해야 원금을 보존할 수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저 바지를 만들어서 얼마 정도면 소비자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며 좋은 퀄리티를 갖출 수 있을까에만 초점을 맞췄어요. 그래서 펀딩 금액은 1억원이었지만, 정작 수익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Q _그 많은 펀딩 금액을 모은 데에는 어떤 설득력이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A _운과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이야 펀딩에 대기업도 뛰어드니까 게임이 안 되죠. 펀딩 플랫폼이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초창기 시절이라 제 기획과 마케팅도 적절했던 것 같고요. 또, 오픈발도 있던 것 같고 제 블로그를 오랫동안 봐온 분들이 보낸 응원이라고도 생각해요.

Q _롯지를 론칭한 지 어느덧 5년 차인데요.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A _저는 늘 저를 설레게 할 무언가를 위해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고고팬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에 대한 흥미가 다음 프로젝트였던 ‘몬순재킷’까지 이어졌어요. 이 재킷이 시장에서 반응이 괜찮다면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했죠. 또 반응이 좋은 거예요(웃음). 그렇게 혼자서 6개월 동안 고생하다 번아웃이 왔어요. 6개월간 여행을 갔다 오니 할 만하다 싶어 올해
5년 차를 맞이하게 됐죠. 한순간도 계획된 건 없었어요.
그저 그 순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죠.

Q _롯지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얘긴가요?
A _여행을 하면서 노마드, 히피인 친구들도 많이 만났어요. 하지만 저는 언뜻 보면 히피처럼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다이내믹하게 살지만, 어느 정도의 선은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롯지가 직원들도 생길 만큼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지금 제가 가진 것들, 그리고 책임져야 할 것들을 다 내팽개치고 떠날 만큼의 무책임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안정이 주는 편안함을 알아버린 것일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롯지는 제가 가진 유일한 콘텐츠라는 생각에 단순한 흥미를 넘어 자연스레 애정도 생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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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박진명
  • 사진 권태헌(인물), 김주원(여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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