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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여행가의 버킷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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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10월 호

모험가에게 여행지에서 실현한 버킷 리스트를 요청했다. 440km를 꼬박 37일 동안 걸어 완주한 감동적인 여행도 있었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 떠난 소소한 여행도 있었다. 이 기록은 해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으나 마침내 성취한 여정의 목록이다.
©난나
01

그 겨울, 바이칼 호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깊은 호수조차 얼어붙는 2월,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 내내 나는 한껏 들떠 있었다. 흰 눈으로 덮인 들판에 소들이 풀을 뜯는 생경한 풍경, 거대한 침엽수림을 지나 꽝꽝 언 호수를 달리고 나니 1시간가량 디스코 팡팡을 타는 것 같은 시간이 이어진다. 종이 인형처럼 이리저리 나부끼다 보면 드디어 7시간 만에 알혼섬, 후지르 마을에 도착한다. 영하 26℃, 숨을 쉬면 머리카락, 속눈썹 할 것 없이 그 즉시 다 얼어버리니 이곳에선 모두 다 얼음을 만드는 ‘엘사’가 된다. 푸른빛을 간직한 호수의 얼음 결정체들, 호수의 식물들이 내뿜은 메탄과 산소 방울이 만들어낸 얼음 방울, 호수 바닥에 앉아 귀를 대면 저 아래 흘러가는 물소리까지 들린다. 부르한(샤먼) 바위 옆은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야외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한다. 와보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풍경에 감탄하며 온몸이 저릴 정도로 차가웠던 여행을 뜨끈한 생선 수프와 반야로 마무리했다. 이제 바이칼 호수에 대한 짝사랑을 끝낼 수 있겠다 했는데, 숙소 주인이 구글 번역기를 건넨다. ‘여름의 바이칼 호수를 봐야 해. 초록 초록하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호수가 반겨주는, 지금 본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그녀는 바이칼 호수에 대하여 고정관념과 오만에 빠질 뻔했던 나에게 다른 버킷 리스트를 선물했다. 여름의 바이칼 호수를 말이다.
난나
여행작가, 긍정적이고 즉흥적인 내가 되려 여행을 떠난다.
  • ©난나
  • ©난나
02

라마와의 눈맞춤

일상적으로 볼 수 없는 동물에 대한 환상을 늘 간직하고 살았다. 그 자리에 마냥 놓인 존재가 건네는 순수하고도 선한 기운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우연한 기회로 지구 한 바퀴를 돌아 페루에 당도했다. 마추픽추에서 라마와 눈을 맞춘 뒤에야 나는 비로소 페루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신령스러운 고지대에 둘러싸여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 웃음을 건넨다. 알 수 없는 신비한 미소에 마음이 풀어진다.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여행 막바지에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한 알파카는 너무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나와 얼추 비슷한 키와 눈높이를 지녔기 때문이다. 기다란 목을 쭈뼛거리며 그 맑고도 순수한 눈을 끔뻑인다. 빠듯한 여행 일정 탓에 동물들과 느긋하게 교감할 수 없었지만, 훗날을 기약한다. 그 자리, 그곳에 영원히 나의 친구로 남아 있기를.
김진호
포토그래퍼, 여행하는 삶, 삶 같은 여행을 꿈꾼다.
  • ©김진호
  • ©김진호
  • ©김진호
03

엄마와 나, 그리고 유럽

2016년 여름,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엄마는 인천에서 출발해 로마에서 만날 계획이었다. 여행지에선 스마트폰은 그만 보고 주변만 둘러보자며 와이파이에 의지해 여행하던 시절, 이제와 생각해보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엄마, 오후 5시쯤 바티칸 입구에서 만나!’ 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그냥 내 말을 따랐다. 엄마는 바티칸 투어를 마치고 언제, 어디서 올지도 모르는 나를 무작정 기다렸다. 한자리에서 꼼짝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엄마 덕에 다행히 우린 해가 지기 전에 조우했다. 어느새 노련한 여행자가 되어 있던 나는 여행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품고만 살아왔던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더랬다. 이탈리아 로마, 아시시, 피렌체, 그리고 프랑스 마르세유를 거쳐 파리에서 아웃하는 일정으로 엄마와 나는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행은 엄마가 건네준 편지로 마무리되었다. 편지에는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한 사람에 대한 발견이었어. 엄마인 나로서는 인정하기 서운한 일이지만, 너는 이제 걱정 안 해도 되는 어른이구나’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해가 저물기 전, 나는 엄마와의 유럽 여행 이야기로 여행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그 여름, 나는 유럽에서 두 가지 버킷 리스트를 이뤘다. 그토록 고대하던 엄마와 여행을 떠난 것, 그리고 에디터의 삶을 시작한 것. 그래서인지 한여름의 유럽은 덥고 또 더웠지만 걷고 또 걸어도 힘들지가 않았다.
박진명
에디터, 한낮에 맥주를 마시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박진명
04

꿈의 길

아웃도어의 ‘ㅇ’도 모르던 스물여덟 살의 어느 날, 어떤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스웨덴 북극권에 440km에 걸친 ‘왕의 길’이라는 게 있는데, 스웨덴에서 가장 길고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왕이라고, 겨울에는 24시간 내내 해가 뜨지 않고, 여름에는 24시간 내내 해가 지지 않는 곳이라고, 북극여우와 스라소니와 곰이 사는 보금자리라고. 텐트 한 번 쳐본 적 없는 내가 저곳을 걸을 수 있을까. 나는 문득 문명을 떠나 거친 환경에 놓인다면 스스로를 오롯이 책임질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졌다. 어쩌면 아무도 없는, 지독히도 적막한 북극권의 야생만이 내게 답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스웨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왕의 길을 완주하기까지 정확하게 37일이 걸렸다. 등에는 텐트와 침낭, 그리고 식량이 담긴 23kg 배낭을 짊어지고 홀로 산속을 헤맨 시간이다.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나아가고, 수천 마리의 모기떼들에게 쫓기기도 했다. 곰이 나올까 5시간 넘도록 고래고래 노래를 비명처럼 지르며 걷기도 하고, 끝도 없이 장엄한 절벽 앞에 아이처럼 주저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 텐트 치는 방법조차 제대로 몰랐던 도착한 첫날부터 체온 조절을 하고 악천후에 대비하는 방법을 알아간 나날들을 지나 지독한 고독과 신체의 한계를 알아버린 37일 차까지. 다시 문명으로 돌아오던 날, 내 피부는 갈라지고 짓무른 흉터와 굳은살로 가득했고 호수의 물로 씻어온 몸은 그 어느 때보다 다부지고 강건해졌다. 2021년 서울, 나는 에어컨을 켜 찬 공기가 가득한 방에서 문득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어쩌면 그건 꿈이었을지도 몰라.
조은수
작가, 사람과 지구가 궁금해 아프리카와 북극권을 여행했다. 현재는 셰퍼드 한 마리와 함께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중.
©조은수
05

아이스크림 메이커의 미국 동부 모험

여행은 항상 새로운 상상과 또 다른 인생을 열어준다. 2016년 미국 동부로 떠났던 아이스크림 여행을 통해 우리 부부는 결혼식 대신 ‘스티키리키’라는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온 내 짝은 아이스크림을 참으로 좋아한다. 그냥 좋아한다고만 하기에는 표현이 부족할 수도 있다. 대학 시절 방학 때마다 친구들과 아이스크림 트럭을 몰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했고, 서울에 온 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기 위해 직접 만들어 팝업 스토어를 여러 차례 열기도 했다. 우리만의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겠다는 꿈이 생겼고, 2017년 5월 서울 작은 골목에 ‘스티키리키’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오픈했다. 한국에는 이탈리아식 젤라토 가게가 많다. 미국식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남편은 이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뉴욕과 필라델피아 그리고 동부 해안가의 케이프메이 등 총 열흘 정도의 아이스크림 리서치 여행을 다녀왔다. 어떤 날은 마트에서 벤&제리 아이스크림 파인트를 사 먹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길가에 세워진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혹은 해변가 보드워크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어떤 날은 홈메이드 아이스크림을, 또 어떤 날은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다. 다양한 맛과 철학을 가진 아이스크림 가게들을 방문하며 ‘스티키리키’는 어떤 맛과 철학을 추구할지를 상상할 수 있었고 결국 현실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번 여행이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가족들과 함께한 동부 해안가 ‘케이프메이’라는 도시의 보드워크에서 스티키리키의 시그너처 컬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스티키리키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여름 해변가 보드워크에 온 듯 따뜻하고 즐거운 마음을 얻길 바라며 햇살처럼 따뜻한 노란색, 케이프메이에서 보았던 하늘의 색, 그리고 바다색을 조합해 만들게 되었다.
박은희
스티키리키 아이스크림 대표, 새로운 아이스크림 세계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박은희
06

제주도 올레길 완주

군 복무 시절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던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3박 4일의 휴가 내내 제주의 올레길만 걸었던 적이 있다. 걷는 내내 친구에게 “네가 말한 여행이 행군이었냐?”라며 투덜거렸지만 내심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쨍한 하늘과 옥색 바다를 원 없이 보며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특히 해안 도로와 나란히 걸을 때 들려오는 시원한 파도 소리에 감동했고, 숲길을 지날 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갈대 소리에 위로받았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제주의 올레길을 완주하는 것이 나의 버킷 리스트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전역을 한 후 사회생활을 하고, 따스한 사람을 만나 연애와 결혼을 하는 8년 동안 고질병처럼 틈만 나면 제주도를 찾았다. 그리고 때로는 혼자, 때로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8년이 지난 후, 나를 꼬드겼던 그 친구와 함께 올레길의 마지막 코스를 걸었다. 전날까지 일기예보에서 비 소식이 있었지만 운 좋게도 아침부터 맑은 날씨를 허락받았다. 덕분에 친구와 함께 마지막 길을 걷는 내내 지난 8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26개의 길을 걸었던 긴 시간과 짊어진 배낭보다 묵직하게 남은 추억들은 겹겹이 쌓여 우리의 마음을 더욱 먹먹하게 했다. 더불어 본래 제주도의 방언인 ‘올레길’을 단순히 ‘좁은 골목길’로만 이해하자니 그 의미가 전혀 좁거나 가볍지 않게 느껴졌다.
강정원
여행작가, 따뜻한 순간을 만나면 사진을 담고, 소중한 순간을 만나면 글을 쓴다.
©강정원
07

오감을 채우는 식도락 여행

여행과 코비드. 2021년부터는 이 두 단어가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이기만 했고, 무심하게도 현재진행형이다. 팬데믹 전에는 누구나 그랬겠지만 여행 계획과 여행지에서의 목표는 화려했고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바이러스 시대를 겪으면서 이 모든 게 바뀌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시간이 좀 지나 오스트리아로 이사를 왔는데 오자마자 하드 락다운에 걸려 때로는 외출이 아예 불가하고,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서 락다운 중에 간결하고 확실한 목표를 세웠다. 락다운이 해제되면, 정말 큰 계획 없이 자유롭게 여러 도시들을 방문하며, 맛있는 것들을 잔뜩 먹자는 것. 나는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이곳 오스트리아에는 바다가 없어 신선한 해산물을 볼 수 없을뿐더러 그나마 판매하는 해산물의 가격도 고기에 비해 너무 사악하다. 그래서 락다운 이후 여행의 첫 번째 목표는 맛있는 해산물을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버킷 리스트라고 하기엔 소박하고 미미하지만, 그만큼 간절했다. 육류가 주식인 오스트리아에서 벗어나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로 떠났고 여행 내내 그동안 먹지 못했던 해산물을 잔뜩 먹었다. 거의 매끼 식탁을 해산물로 가득 채웠다. 크로아티아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석화와 문어가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언제 또 통행에 제한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조만간 어디로든 또 발길 닿는 대로 다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아라
여행가, 맛있는 걸 찾아 유럽 이곳저곳으로 떠난다.
©고아라
08

버킷 리스트가 낳은 버킷 리스트

하나의 버킷 리스트를 실현하러 간 여행에서 또 다른 버킷 리스트가 생긴다. 22살에 겁도 없이 홀로 떠난 유럽에서 수많은 도시를 돌아다녔지만 특정한 도시를 떠날 때 망설임은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만큼은 달랐다. 못내 남은 아쉬움은 새로운 버킷 리스트를 낳았다. 50일간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언젠가 파리로 다시 돌아오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3년 뒤 ‘파리를 다시 여행한다’는 버킷 리스트를 실현할 기회가 생겼다. 폴란드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던 중 파리에서 일주일 동안 머무를 수 있던 것. 당시 수많은 선택지가 내 앞에 놓여 있어 한번 갔던 여행지를 또 간다는 것이 조금 망설여졌지만 버킷 리스트가 가진 힘은 실로 놀라웠다. 꿈에 그리던 파리에 도착하고 난 후 지난 여행에서 하지 못했던 일을 잔뜩 했다. 디즈니랜드의 환상적인 퍼레이드, 몽생미셸, 에펠탑 앞에서 사진 찍기,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초상화 그리기. 일주일 동안 버킷 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파리를 쉼 없이 돌아다닌 내가 얻은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또 다른 버킷 리스트다. 이제는 파리에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그전보다 더 오래, 더 길게. 꿈만 같은 파리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송주영
에디터, 여행지에서만큼은 ‘쏘냐’라는 이름의 부캐릭터 활동에 심취해 있다.
©송주영
09

엷은 미소의 집합체

평소 여행을 떠날 때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니다. 대부분 여행은 초행길이라 숙소를 찾지 못한다거나 언어의 어려움이 있으니 내가 그 장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정보들만 습득해 가는 편이다. 이 부분을 60%라 한다면 나머지 40%는 낯선 그곳에서 의미를 찾고 발견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꼭 해보고 싶었던 목록을 적는 버킷 리스트가 내겐 없다.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고 떠나면 그 리스트가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집착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도 있다. 우연찮게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인연, 그때 그 장소에서 마음이 끌리는 대로 들었던 음악, 길을 잃고 여기저기 걸으며 마주한 풍경들. 온전히 그 시간을 사는 것. 그것이 나에겐 여행의 의미다. 최근에는 여행지에서 눈길을 끌었던 풍경을 담은 사진들로 엽서를 만들었다. 평소에 내가 찍은 사진으로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는데 돌아보니 이것이야말로 나의 버킷 리스트였던 것 같다. 그 순간에 포착한 기록이 참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마음에 들고 뭉클해졌다. 계속해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름다운 장면들을 모은 나의 사진들로 그때의 기억을 일상으로 스며들게 해 행복감을 오래오래 품고 싶다.
신보라
사진가, 살면서 딱 한 가지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의 작은 것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바란다.
©신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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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밤하늘

서호주 퍼스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가보고 싶었던 피나클스 사막은 지구에서 화성과 가장 흡사하게 닮은 곳으로 오지 여행가들에게 사랑받는 곳 중 하나였다. 해가 질 무렵 막 도착한 피나클스 사막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원래 숲이었던 이곳은 3만6000년 전부터 인도양의 영향으로 사막화되면서 땅에서 솟아오른 수천만 개의 석회암 기둥이 대지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와 석회암 기둥들이 석양빛에 물들기 시작하자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처럼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였다. 사막의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저녁을 지나 밤이 깊어갈수록 하늘은 더욱 짙어졌다. 시간을 물감 삼아 겹겹이 어둠이 덧칠해갈수록 별들이 늘어나고, 밤 10시 즈음이 되면 은하수가 약속이라도 한 듯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별이 우르르 쏟아진다는 표현은 어쩌면 사막의 밤하늘을 경험한 누군가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고개만 들었을 뿐인데 수많은 별들이 내 눈동자 속으로, 머리 위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말이 안 된다고, 미쳤다는 탄성과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이따금 삶이 고되고 버거울 때마다 피나클스 사막의 밤하늘을 떠올려본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밤하늘,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흐르던 은하수. 다시 마주할 그날을 위해 나는 이 생을 소중히 지켜가야만 한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윤현진
제로웨이스트 숍 운영자, 여행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라고 믿는다.
©윤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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