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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매번 좋을 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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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09월 호

여행에 있어서 실패가 어딨고 성공이 어딨냐지만, 그래도 분명히 가슴 한편에 남은 찝찝함을 견딜 수 없는 여행도 있을 것이다. 실패한 여행에 대해 모험가들의 글 조각을 전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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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렀던 여행의 기술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언니와 나는 베트남 호치민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나에게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언니도 겨우 두 번째 여행이라 우리는 낯선 얼굴을 한 사람들과 낯선 언어로 적힌 간판들, 낯선 맛이 나는 음식 틈에서 무엇을 하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우리가 호치민에 도착해 처음 갔던 식당에서 호기롭게 주문했던 쌀국수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그냥 나왔던 것이 그랬고,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떠난 호핑 투어에서 바다에 발도 담그지 못한 채 돌아왔던 것도 그랬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웠던 건 해가 진 저녁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밤이 되면 모든 게 다 무서웠다. 우리만 보면 짖어대는 호텔 앞 까만 개가, 어린 동양인 여자애 둘이 걸어갈 때마다 종종 휘파람을 불어대던 현지인들이 그저 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건 분명 실패한 여행이 맞다. 여행지에서는 낯섦에 흠뻑 빠져 뭐든 느끼고 경험하는 게 맞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어두워지기만 하면 숙소로 돌아가 녹슨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누어 마셨던 사이공 맥주병과 트윈룸이었지만 꼭 한 침대에 누워 했던 우리의 말들이 중요하지.
마케터 | 박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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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의 쓴맛

20대 초반, 중국 교환학생과 베트남 인턴을 연달아 다녀왔다. 돌아와보니 친구들은 전부 유럽에 빠져 있었다. 그곳의 체리 맛이 어떻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남자가 이런 말을 했고, 무슨 매장에서 가방을 얼마에 샀고,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엮어 엽서집을 출간하고 싶다고. 친구들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유럽 얘기를 했다. 지겨웠고, 다급했다. 이대로 나만 동방 국가에 갇히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핀란드에서 시작해 헝가리에서 끝나는 일정이었다. 오토바이를 팔고 집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그걸 모두 유로로 바꿨다. 여행 시작 이틀째, 차에 둔 돈 봉투를 통째로 잃어버렸다. 인터넷 카페에서
여행 메이트를 찾아냈지만, 하루 종일 그의 기념사진만 찍어야 했다. 금방 헤어졌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은 날다람쥐 연구가였다. 밤늦도록 내게 야생동물 사진을 보여줬다. 마트에서 사 온 초콜릿과 우유로 대부분의 끼니를 때웠다. 친구들의 유럽 찬양이 그저 호들갑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나는 내 여행을 바쳤다. 유럽 여행은 결국 실패했다.
에디터 | 조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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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이방인의 삶

대학교 졸업반 당시 진로의 기로에 서 있던 나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멜버른에서 이방인의 삶을 시작했다. 단돈 200만원만 쥐고 떠난 여행이라 당장 돈부터 벌어야 했다. 멜버른의 아름답고 위대한 대자연과 라이프스타일을 느낄 틈도 없이 야간 청소를 하며 이력서를 돌렸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엔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인터뷰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기쁜 마음으로 찾아갔으나 억센 호주 발음에 기가 눌려 입술도 떼지 못한 채 돌아와야만 했다. 결국 야간 청소를 하며 돈을 벌다 유명 마트의 푸드코트에 있는 케밥집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내가 받았던 건 돈뿐만 아니라 온갖 성희롱과 인종차별이었다. 자유롭고 여유 있는 멜버른 라이프를 꿈꾸며 출국한 지 3개월 뒤 나는 다시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결국 멜버른 해변에 발 한번 담그지 못했고 그토록 꿈에 그리던 그레이트 오션 로드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한국에서 도망치듯 떠나온 것처럼 이곳도 그렇게 빠져나왔다. 물론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멋지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많이 어렸고 치열한 삶에 이미 지쳐 있었으며, 외국살이에 대한 로망이 너무나도 컸던 것이 멜버른 라이프에 실패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디자이너 | 류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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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박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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