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Navigation

DESTINATION

예술과 공간의 매개, 공공미술

etc

발행 2021년 09월 호

길을 걷다 보면 우연히 마주치는 설치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궁금했다.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작품들의 가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설치물을 좋아하고 잘 사용하고 있다면 의미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색해진다. 아주 오래전부터 현재까지 공공미술의 역할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도시들을 살펴봤다.
1
1

[Germany, Berlin] 역사를 예술로 기억하는 도시

독일 베를린은 모든 역사를 되새기는 도시다. 나라 전체가 역사 교육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민감한 만큼 수도인 베를린에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장소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다. 현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조형물은 하나의 고철덩어리에 불과할 수 있지만 공익을 위해 설치된 만큼 주변의 환경과 조화를 이룰 때 상징성을 띤다. 기념 조형물을 독일어로 ‘뎅크말(Denkmal)’이라 부르는데 이는 한번 더 생각해보자는 표시라는 의미를 지녔다. 경고의 의미가 강한 조형물일 경우 ‘만말(Manmal)’이라 부르고 존경의 뜻으로 만든 조형물일 경우에는 ‘에레말(Ehrenmal)’이라 구분되어 있다.
베를린에는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가 깃든 조형물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유대인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민간인과 전쟁 포로들을 학살한 것에 대한 반성과 용서도 있고, 추모도 있다. 코라베를리너 거리에는 침묵 속에서 사라져 간 이들을 위한 석관묘가 있다. 홀로코스트 희생 유대인 600만 명을 추모하기 위해 2711개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나치의 주요 관청이 있던 베를린의 심장부에 거대한 추모비를 세운 이유는 과거를 기억하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다짐처럼 보인다. 이곳은 추모의 장소이자 계몽의 장소, 만남의 장소이며 홀로코스트 흔적을 성찰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베벨 광장 지하에는 정사각형 투명 유리로 된 ‘도서관’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베를린판 분서갱유라 할 만한 사건이 도시의 중심부인 베벨 광장에서 벌어진 것. 히틀러가 집권하던 때에 독일에선 수많은 책이 불태워졌는데, 유대인 작가들과 학자들의 책은 물론 나치를 비판한 책까지 모조리 화형식을 치렀다. 이 사건 이후 250명 이상의 문필가들이 독일을 떠나야 했다. 이로써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꽃피우던 1920년대 베를린 문화의 황금기도 끝나버렸다. 이스라엘 출신의 예술가 미하 울만은 ‘도서관’이라는 예술품을 통해 독일 사람들이 오랫동안 만나고 소통하던 공간에서 책의 부재를 시각화했다. 지식과 문화 예술을 탄압하려는 분서 행위, 이 역시 그 시대를 기억하자는 의미다.
1
2

[U.S.A, Chicago] 문화 예술 도시 브랜딩의 성공 사례

재즈의 도시이자 바람의 도시이며 건축의 도시, 문화의 도시인 시카고. 여러 수식어가 증명하듯 도심 어디서든 문화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도시 곳곳에는 수많은 예술품과 조형물이 관광객을 사로잡지만, 특히 시카고의 공공미술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밀레니엄 파크를 찾는 것을 추천한다. 밀레니엄 파크는 건축과 문화 예술이 잘 어우러진 시카고 최고의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이다. 1997년 당시 시카고 시장이었던 리처드 데일리(Richard M. Daley)가 밀레니엄 2000년에 맞춰 완공할 계획이었으나 공사가 지연되면서 2004년에 완성되었다. 애초에 이 공원 프로젝트의 취지는 도심 중심에 문화 예술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도시의 이미지를 새로이 만들고자 한 것. 시카고의 전통 문화인 재즈와 블루스 음악을 고취시키고 예술도시라는 도시 브랜드를 확립하고자 했다. 건축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와 캐서린 구스타프슨(Kathryn Gustafson)이 맡았으며 공공미술은 공개적으로 공모를 받아 당시 최고의 미술가인 제프 쿤스(Jeff Koons)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선정되었다.
가장 유명한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는 영국이 낳은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으로, 제작 기간만 3년에 걸쳐 만들어진 대형 조각 작품이다. 클라우드 게이트는 도심의 건축물과 예술 작품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뤘다는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마치 거대한 거울을 보고 있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매끄러운 슈퍼미러로 처리했다. 이는 대형 볼록거울처럼 시카고의 푸른 하늘과 멋진 스카이라인을 반사적으로 보여주며 색다른 이미지를 형성했다. 이 외에도 밀레니엄 파크에는 갤러리에서 운영하는 전시 공간도 있어 1년에 분기별로 매번 새로운 전시회도 경험할 수 있다.
밀레니엄 파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야외 공연장인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Jay Pritzker Pavilion)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했다. 리본 장식의 모양에서 모티프를 얻어 세련되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공연장 앞에는 4000여 석의 좌석이 있고 잔디 광장에는 약 7000여 명 정도가 피크닉을 즐기며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이곳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카고 재즈 페스티벌, 그랜드 파크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등 봄부터 가을까지 야외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이 외에도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의 공공 미술가인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가 디자인한 거대한 분수 형태의 환경 조형물, ‘크라운 파운틴’도 빼놓을 수 없다. 내부에 내장된 LED 스크린을 통해 시민 1000여 명의 얼굴 표정이 등장한 것이 특징. 이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시카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 1
    ©elesi/shutterstock
  • 1
    ©Naeblys/shutterstock
  • 1
    ©Julien Hautcoeur/shutterstock
3

[Sweden, Stockholm] 지하 세계의 아름다움

스웨덴은 공공미술의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나라로, 정부와 예술단체, 대중이 힘을 모아 거리와 공원을 꾸미거나 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일상이다. 국가 정책으로도 아낌없이 지원을 펼치는데, 이렇게 마련된 제도가 스톡홀름의 1퍼센트법이다. 무려 1963년 스톡홀름 시의회가 처음 실행한 제도로, 전체 건축 비용의 1%를 일반 대중이 누릴 수 있는 공공미술 작품 제작과 설치에 할애하도록 규정한 법안이다. 스톡홀름의 경우 의무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목표를 우선으로 한다. ‘모든 사람이 주변 환경 속에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한다’. 이처럼 미적 환경에 투자하도록 법안으로 제정되어 있는 스톡홀름 공공미술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지하철역이다. 이는 총 100km의 길이에 달하는 스톡홀름 지하철이 ‘세상에서 가장 긴 갤러리’라는 수식어로 불리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지하철 첫 개통을 앞둔 1950년, 지역 예술가들이 차갑고 투박한 지하에 예술을 입히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그것이 시작점이 되어 현재까지도 다양한 역에 시대별로 가장 트렌디한 미술과 디자인, 건축 기법 등을 새기고 있다.
1950년대에는 콘크리트에 타일을 붙이는 ‘욕실 건축’이, 1970년대에는 당시 스웨덴의 농촌 인구 감소와 삼림 벌채, 노동에 대한 이야기 등 시대적,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지역적인 특징을 기반으로 예술가들의 개성을 입힌 디자인이 유행했다. 현재는 스톡홀름 지하철역 100여 개 중 90개 이상의 역에는 디자이너와 건축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150여 명이 참여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국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하철역’에 이름을 올린 T-센트랄렌 역부터 우주와 기술 발전을 상징하는 4가지 요소를 주제로 주변에 위치한 왕립기술연구원의 철학을 표현한 테크니스카 획스콜란(Tekniska Hőgskolan) 역까지 다양한 회화, 모자이크, 조각, 설치미술 등으로 역사의 한 장면이 되고,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고 있다.
  • 1
  • 1
    ©orxy/shutterstock

1
  • 에디터 박진명
  • 취재협조 AB-ROAD 자료실

TAG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