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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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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08월 호

다시 그런 여름이 돌아올까? 무대 위에선 손끝 하나로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아티스트들이 에너지를 쏟아내는가 하면, 그 아래에서는 거리 두는 법 없이 낯선 이를 끌어안기도 하며 축제를 즐기는 그런 여름 말이다. 까무룩 서랍 속 깊숙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여름 페스티벌에 관한 추억을 다시 꺼내 햇빛에 비췄다. 참 신기하게도 바래지 않고 더욱 선명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다.

쎄시봉(아주 멋져, 훌륭해! Cʼest Si Bon) [오리악 재즈 페스티벌 Aurillac Jazz Festival]

프랑스 남부 지역에 있는 몽티냑은 오리악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이 아니었으면 올 일 없었던 정말 작은 시골 마을이다. 오리악까지는 7km, 차로 30분쯤 걸린다고 들었다. 대중교통도 마땅치 않은 곳이라 전기 자전거를 빌려 출발하는데, 웬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그리고 비포장도로가 계속해서 펼쳐졌다. 마치 투르 드 프랑스를 완주한 사람처럼 땀범벅이 돼서야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동네 아저씨는 내게 ‘중국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니?’라며 농담을 던졌고 ‘저 한국 사람인데요’라고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입구에서 페스티벌 티켓을 검표한 뒤 마을로 들어섰다. 작은 무대 위에 1930년대 복고풍의 미남처럼 생긴 가수 존 피터 굿나잇이 올라가 있었다. 그의 기타 선율을 시작으로 옛날 샹송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잠금장치가 고장난 전기 자전거를 내 시야에서 잘 보이는 곳에 세워두고 앉았다. 1시간여의 연주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이런 작은 규모의 연주 영상을 수없이 보며 동경했는데 내가 그 신 안에 들어와 있다니. 아티스트가 발을 구르며 피아노를 치고 음악이 좀 편안해질 때면 연주자들끼리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피아노와 트럼펫으로 한 음씩 번갈아 연주하며 장난을 치는 것도 그저 황홀하게 바라볼 뿐. 어느새 이 작은 마을에는 어둠이 내리고 끈적이는 여름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귓가에는 옛날 프랑스 노래가 들려왔다. 꽤 멋진 여름날의 저녁이었다.
-세일러 이지세일링-

우리는 지금 놀아야 한다 [에피조드 페스티벌 Epizode Festival]

1년 내내 묵혀둔 휴가로 다녀온 에피조드 페스티벌은 베트남의 숨은 진주라 불리는 푸꾸옥 섬에서 11일간 열리는 대형 전자음악 페스티벌이다. 세계 최고의 하우스, 미니멀, 테크노 DJ가 대거 출연하며 연말과 연초를 온종일 춤과 음악, 사랑으로 보낼 수 있다. 푸꾸옥으로 떠나기 전날 아침까지 술을 마시다 비행기를 놓칠 뻔하며 비몽사몽 도착했지만, 그곳 분위기에 다시 취해버렸다. 가방에는 비키니 두 벌과 바지 두 개가 전부였다. 롱 비치를 따라 각기 다른 콘셉트로 나뉜 네 개의 무대에서는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왔다. 낮에는 앰비언트에 요가와 명상을, 밤에는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레이브(Rave, 광란의 파티를 즐기는 문화)를 즐긴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레이버들은 좀비처럼 잠을 자지 않는다. 4일 후, 새해 전야가 되자 화려한 조명과 함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강한 초록빛의 조명과 비현실적인 분위기에 취해 마음속으로 되뇌던 말을 입 밖으로 토해냈다. 이내 2020년을 맞았고 사람들의 뜨거운 함성이 터졌다. 아, 그때는 몰랐다. 그 외침이 팬데믹을 향한 인사였는지.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우리의 불안과 불화는 덜 놀아서 생겨난다고.
-콘텐츠 에디터 김소연-

꼭 함께해야 즐거운 날도 있다 [고아웃 캠프 류큐 GOOUT Camp Ryukyu]

밖에서 자는 것이 생활이던 그해에는 일본 출장이 세 건이나 있었다. 그중 한 번은 후지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고아웃 잼보리 페스티벌에 취재차 다녀왔다. 이는 후모톳바라 캠핑장에서 2박 3일 동안 2만여 명의 캠퍼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다. 일본 아웃도어 문화에 대한 환희와 감탄에 찬 출장이 끝나고 늦여름,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고아웃 재팬 류큐’에 다시 참가하게 되었다. 오키나와 현민의 숲 캠핑장에서 열린 이 페스티벌은 잼보리에 비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고아웃 캠핑 페스티벌의 꽃은 100여 개가 넘는 해외·로컬 아웃도어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곳에서는 기껏해야 10개의 부스도 채 안 되었으니 얼마나 소규모인지 짐작이 되려나. 게다가 멀멀한 잔디밭이라 물 건너왔다는 실감도 나지 않았다. 비도 많이 온다고 해서 좀처럼 신이 나지 않았다. 정해진 사이트에 텐트를 피칭하고 해먹에 잠시 몸을 맡기고 있던 와중에 지난봄, 후지산에서 만난 홍콩 캠퍼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뒤를 이어 낯익은 일본 캠퍼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딱 한 번 본 사이인데 명절에 만난 친척처럼 괜히 반가웠다. 그곳 현민의 숲에 있는 2박 3일 동안 우린 꽤 친해졌다. 종종거리며 취재하고 있는 나를 붙잡아다 밥을 먹이고 지쳐 앉아 있으면 시원한 맥주를 건넸다. 그해를 복기해보면 오키나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역시 장소에 대한 임팩트보다는 함께한 사람들이 기억의 선명도를 결정하나 보다. 가장 신기한 건, 태풍 예보가 있었던 그날 오키나와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 에디터 박진명-

  • 에디터 박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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