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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

모든 길 끝엔 바다

유럽 > 몰타

발행 2021년 08월 호

지중해 한가운데 깊고 푸른 바다와 이글거리는 태양을 포용하는 아름다운 곳이 있다. 오묘하고 신비로운 노란색의 섬나라, 몰타로 떠나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몰타가 왜 좋은데요?

니스, 산토리니, 아말피, 마요르카 등 근사한 유럽의 휴양지를 생각하는 사이, 도착 안내 방송이 나왔다. 사막에 세워진 듯한 빛바랜 레몬색의 아담하고 소박한 건물 한 채, 몰타 루카 국제공항이 보인다. 몰타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무수한 외세의 침략과 통치를 받았다. 그로 인해 이탈리아, 아랍, 페니키아, 영국 등의 문화가 뒤섞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자랑한다는데, 내가 상상했던 전형적으로 세련된 유럽의 모습은 아니었다. 낡고 오래된 어쩌면 한바탕 성수기가 지나 다 떠난 자리를 여전히 미련스럽게 지키고 있는, 조금은 실망스러운 유럽의 풍경이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도대체 바다는 어디에 있는 건지, 이곳이 정녕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몰타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거칠게 운전해도 좋으니 버스나 시간 맞춰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제 막 도착한 여행자들에게 내가 몰타에 처음 왔을 때 이곳의 친구들이 해줬던 대답을 한다. 버스 시간표는 장식일 뿐 버스는 올 때 되면 오니까 몰타의 따가운 햇살부터 즐기고 있으라고. 대중교통뿐 아니라 몰타는 부족하고 불편한 것들이 차고 넘치지만 왜 좋은지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면 한나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황토색 석회암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태양에 그을리고 바닷바람에 퇴색되어 빛바랜 노란색으로 바뀐 지 오래다. 사막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싶으면 선인장이 나타나 그리웠던 초록색을 보여주고 기대하지 않아도 언제나 길의 끝에는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매일 태양은 사라지기 전 라임스톤의 노란 골목, 푸른 바다 그리고 몰티즈 모두에게 찬란한 금빛을 선물한다.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지게 촌스럽고 불편한 것이 많다고 불평하거나 새롭게 바꿀 수도 있는데, 과거로부터 이어온 현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킬 줄 아는 몰타 사람들에게 신이 주신 선물과도 같다. 여러모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몰타가 아닐 수 없다.

느린 걸음으로 즐기고 싶은 도시

몰타의 면적은 고작 316㎢, 제주도의 6분의 1 규모, 강화도 크기만 하다고 한다. 하루 만에 전국 일주가 가능하다는 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작다고 볼 게 없다는 편견은 금물. 보면 볼수록 꿀 바른 듯 매력이 흘러 넘쳐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만 싶을 것이다.
소요 시간 30분이 예상되는 거리지만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다 보면 늘 2배는 늘어난 시간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구분이 안 가는 라임스톤의 단조로운 건물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문패, 손잡이, 화분, 발코니 컬러 등 어느 하나도 같은 건 없다. 무심하게 길을 건너는 고양이, 도란도란 정겨운 어르신들의 대화에 슬쩍 귀 기울이다 앞을 보면 길 끝엔 바다가 걸려 있다.
조용히 걷고 싶은 날에는 몰타의 옛 수도 임디나로 향한다. 시공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만이 가득한 높은 벽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좁은 S자 골목길에서 나를 구원하는 것은 풍성하게 핀 부겐빌레아와 성 바울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다. 길을 잃기에도 너무 작은 곳이지만 하늘과 맞닿은 전망대에서 젤라토를 먹으며 발아래 4D로 펼쳐지는 몰타의 도시들을 찾다 보면 길 건너편 라바트의 차와 파스티찌가 생각날 만큼의 허기가 몰려온다.
반짝이는 윤슬 위, 하늘과 뭉게구름 아래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 도시인 몰타의 현재 수도인 발레타를 본 어느 누구라도 그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여행자의 기분을 내고 싶은 날 먹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즐길 거리가 풍부하고 교통이 편리한 발레타만큼 훌륭한 목적지는 없다. 어퍼바라카를 구경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언덕길을 닮은 그랜드 하버로 향하는 길, 캔틸레버 구조의 형형색색의 발코니와 네모반듯한 라임스톤 건물들이 가진 단조로움에 도취되어 도시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낮은 계단에 불편하게 놓인 테이블에 아페롤을 한 잔 올려두고선 멈출지 몰랐던 카메라 셔터와 내 손가락에 휴식을 선물한다. 그린 브리지에서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을 구경하다가 베니스의 곤돌라를 닮은 몰타의 디사를 타고 빅토리오사로 건너간다. 여행 속의 여행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 에디터 박진명
  • 난나
  • 사진 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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