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Navigation

ROAD NEWS

INTERVIEW

여행 작가로 살아남는 방법

etc

발행 2021년 08월 호

여행 신은 팬데믹 이후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돈과 시간의 문제였던 여행은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차단되었고 여행을 업으로 둔 사람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늘 베스트셀러에 랭크되었던 여행 서적도 자리를 뺏긴 지 오래. 그러나 여행 사진작가 백상현은 여행의 시대가 반드시 다시 온다는 믿음으로 미래를 차곡차곡 준비해가고 있는 중이다.

여행 관련 책자들이 서점 가판대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많던 여행 작가들은 어디로 갔을까. 트위터에서 가끔 안부를 묻곤 하는 생활 여행가는 자신의 의류 브랜드를 론칭했다. 여행을 다니며 불편했던 점들을 보완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며칠 전엔 수납공간이 넉넉한 여행 가방을 만들어 펀딩에 올렸는데, 업로드하자마자 펀딩 금액을 모두 모았다. 그렇게 이름 있는 인플루언서도 아니었는데, 여행에 대한 갈급함을 끌어내는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해외만 종횡무진 돌아다니던 여행 작가는 인도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해외에서 가져온 소품들로 집을 꾸미고 각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SNS 라이브, 혹은 영상으로 제작해 업로드한다. 하지만 반응이 시원찮아 예전에 찍은 여행 사진을 올리며 ‘여행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글을 한번 올리면 조회수가 남부럽지 않던 작가라서 그런지 형편없는 영상 조회수에 실망했던 모양이었다.
소도시 여행가이며 <저스트고 스위스>, <누구나 꿈꾸는 유럽 여행지 100> 등을 쓴 백상현 작가와 만나자마자 안부부터 물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안녕하신가요?’ 백 작가는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힘들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여느 여행 작가가 그렇듯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준비하고 있었던 계획들이 모두 틀어졌죠. 그렇게 한 달 동안은 일시 정지 상태였어요.” 그러다 백 작가는 다가올 여행에 대한 연습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20년간의 여행을 복기하며 자신의 사진과 글을 아카이빙했다. 동시에 반짝이는 눈망울로 이탈리아 소도시를 여행했던 그때처럼 서울의 동네를 구석구석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루에 많으면 28km씩 걸었다. 그러던 차에 그간의 여행을 아카이빙한 한 권의 책이 탄생했고 백 작가에게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대를 무탈히 흘려보낼 원동력이 생겼다. 색 바랜 그의 오래된 사진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그때가 꿈틀거린다. 첫 해외여행에서 만난 스위스 출신의 노부부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것처럼 백 작가에게 여행과 사진이란 떠올리기만 해도 울컥하는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일렁이는 마음을 다잡을 때는 이렇게 외친다. 다시, 여행을 하겠다고.

Q _간략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A _저는 여행 에세이 작가를 직업으로 삼고 있어요. 그러면서 틈틈이 여행 가이드북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소도시만을 주로 여행한 소도시 여행가이기도 합니다. 소도시 여행을 테마로 상품을 만들어서 여행사와 함께 1년에 한두 번씩 진행하기도 했어요.

Q _올해 초 발간한 <다시, 여행을 가겠습니다>가 3개월만에 2쇄를 찍으셨다고요.
A _코로나19가 시작되고 1년 동안은 그간 찍은 사진들을 다시 정리하고 짧은 원고를 쓰기를 반복했어요. 그러다가 작년 12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출판사 대표를 만나 그가 구상하고 있는 책에 대한 내용을 듣게 됐어요. 20년의 작가 생활을 복기해보는 책을 만들어보자고요. 마침 제가 하고 있던 작업이기도 해서 말이 나온 지 딱 한 달 만에 뚝딱 완성하게 됐죠. 코로나19 덕분에 나온 책이 <다시, 여행을 가겠습니다>예요.

Q _여행이 단절된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나요?
A _작년 2월부터 팬데믹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계획하고 있던 몇 권의 책이 엎어졌어요. 20년 동안 여행 작가 생활을 하면서 처음 겪는 실직 생활이었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시간과 돈 문제라고만 여겨졌던 여행이 바이러스로 인해 차단되다니. 한 달 동안은 매일 하던 것처럼 원고를 쓰려고 카페를 갔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쓸 수 없더라고요. 매일 앉아만 있다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생각을 다잡았죠. 분명 여행의 시대는 반드시 올 텐데, 이렇게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주변에서 제가 가장 잘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찾은 게 서울 걷기예요. 서울에 있는 동네를 카메라 하나 메고 여행하듯이 하루 평균 20km씩 걸었어요. 이건 다가올 여행에 대한 연습이고, 나는 여행가이니까 일상도 여행처럼 보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어요.

Q _평소 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간과해왔던,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한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한 거네요.
A _맞아요. 매일 보던 서울의 풍경을 생경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니 그간 몰랐던 곳들도 속속들이 찾아낼 수 있었어요. 종묘 옆 순라길이나 서울역 근처의 만리재 등 서울의 길들을 걸으면서 체중도 많이 감량했고요.

Q _언제 처음 카메라를 들었나요?
A _1999년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됐어요. 여느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이 7일 정도 휴가를 내서요. 자동 카메라로 찍었는데 갔다 와서 보니 결정적인 순간을 담지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2000년도부터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사서 독학으로 사진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Q _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시작하게 된 거네요.
A _그렇죠. 그 7일간의 여행이 직장을 그만둘 만큼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죠. 파리와 런던을 여행했는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어요. 그때가 딱 서른이었어요. 인생의 전환점을 찾기에 알맞은 나이였죠. 여행을 하는 순간도 행복했지만 그보다도 더 큰 계기가 있었어요. 첫 이방인 친구를 사귀게 된 거예요. 버스 정류장에서 스위스에서 온 노부부를 만났어요. 자리를 양보하다가 대화를 시작하게 됐고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게 되었죠. 그렇게 한 장 한 장 오고 가는 편지가 쌓여가던 때, 그들이 살고 있는 스위스 바젤이라는 작은 동네에 초대를 받게 된 거예요. 그곳에서 저를 위해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해놓은 한식 한 상에 큰 감동을 받기도 했어요. 할아버지의 고향 마을인 졸로투른에 데려가서 구경을 시켜주며 고향 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설명해줬어요. 우리가 모르고 살아가는 소도시들이 정말 많구나란 생각이 마침 머릿속을 스치더라고요. 그때부터 소도시 여행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됐어요. 화단에 무궁화를 심어 사진을 보내주고 그들의 딸 집에도 초대를 받는 등 20년 동안 우정이 이어졌고, 할아버지는 몇 년 전 영면하셨어요. 그분들 덕에 스위스 가이드북도 제작하게 됐고요. 그 책을 들고 할아버지 묘지에 가서 인사드리고 왔죠.

Q _그 찰나의 교감이 지금의 작가님을 만든 거네요.
이메일이 아닌 편지라서 가능했던 이야기인 것 같아요.

A _맞아요. 하루 몇 번씩 전화도 할 수 있고 메시지도 보낼 수 있는 지금 시대에 만났더라면 관계에 대한 에너지가 금방 소모됐을 거예요. 매년 크리스마스나 생일 등 행복한 일이 있으면 축하의 말을 꾹꾹 눌러써 편지를 보내고 몇 주를 기다려 답장을 받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듯 가끔 안부 전화를 걸면서 아날로그적인 교감이 오간 거죠. 나이와 언어를 뛰어넘는 이러한 교감이 지금까지 여행 작가의 업을 유지해온 동력인 셈이에요.

  • 에디터 박진명
  • 사진 백상현(여행사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