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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에 담긴 여행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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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07월 호

사진이나 글과 같은 기록 수단으로만 여행지를 기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날의 어떤 순간이 떠오르는 건 의외로 사소하다. 그중 혀끝의 감각으로 추억을 방울방울 만들 수 있는 쌉싸름한 맥주도 빼놓을 수 없다. 여행지에서 만난 맥주 한 잔의 편린들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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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덕후의 굿즈, 코나 브루잉 Kona Brewing

누군가 나에게 ‘한 달 살이’를 해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와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처음 하와이에 간 건 10여 년 전이었지만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미세먼지 따위는 없는 청명한 하늘, 덥지만 보송보송한 날씨, 해변 곳곳에서 만난 ‘나이스 보디’의 서퍼들 그리고 물감으로 채색한 것처럼 아름다웠던 와이키키 비치의 노을까지. 하와이에서 마주한 모든 것들이 특별하게 느껴지던 찰나, 우연히 마트에서 발견한 코나 브루잉 맥주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워낙 ‘술알못’인지라 맥주의 종류나 맛의 특징까지는 미처 캐치하지 못했지만 내가 매료되었던 하와이의 모습이 일러스트로 담긴 예쁜 캔을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친구와 종류별로 하나씩 구입해 여행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맥주로 달랜 후 빈 캔을 깨끗이 씻어 기념품처럼 한국에 가져왔다. 그걸 본 엄마는 외국까지 가서 쓰레기를 가져왔다며 질색하셨지만 그때 가져온 캔은 여전히 나만의 추억으로 방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코나 브루잉 맥주를 구입할 수가 있어 가끔 하와이가 생각날 때면 사다 마시곤 한다. 머지않은 날 하와이의 푸른 바다를 감상하며 그곳에서 다시 맥주 한 잔을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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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비로드> 편집장 최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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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연결고리, 산 미겔 San Miguel

2년 전 홍콩, 지금처럼 푹푹 찌는 여름이었고 빽빽한 밀도의 도시답게 정체된 공기가 온몸을 짓눌렀다. 전날 밤엔 뜨거운 공기를 게워내려 차가운 술을 왈칵 들이부었다. 숙취 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왠지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전날 밤 어깨를 부딪치던 사람들이 유령처럼 느껴졌다. 실상 거리에 로컬의 흔적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도드라지는 것은 이곳으로 여행 온 이방인과 이곳을 경유지로 삼은 이방인이었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나 마침내 불 켜진 차찬텡(홍콩의 간이식당)을 발견했다. 숙취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기꺼이 로컬 기분을 내려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했다. 커피 대신 맥주 리스트로 눈을 굴리다 낯선 이름 속 익숙한 글자를 발견했다. 스무 살, 처음 맛본 산 미겔은 진한 보리 향과 홉의 조화 덕에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특별한 기분을 내게 해줬다. 산 미겔은 필리핀 맥주지만 홍콩에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1913년이니 꽤 오랜 시간 홍콩의 무더위를 함께했다. 산 미겔을 크게 한 모금 굴려 삼키자 정신이 말끔해졌다. 어제는 유령처럼 희미하던 몸에서 색이 돋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희뿌연 아침이었고 산 미겔은 로컬 식당과 이방인을 잇는 연결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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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트렌드> 에디터 장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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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8m 고원이 선사한 맥주, 플롬 Flåm

노르웨이 피오르 지형에서 빚은 맥주를 마시러, 오슬로에서 출발하는 산악열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인 플롬은 피오르 지형에 터를 잡은 마을이다. 열차 출발 시간은 23시 23분. 직행 열차는 없고, 뮈르달역에 내려 환승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열차와의 시간 간격이다. 새벽 4시경에 뮈르달역에서 내려 플롬으로 가는 열차로 갈아타야 하는데, 환승할 열차와의 시간 차이가 약 5시간이다. 백야가 한창인 6월의 노르웨이지만, 새벽을 온전히 밖에서 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플롬에서 오슬로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돌아가는 기분은 달랐다. 무료한 시간과 맞설 플롬 맥주라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 이윽고 뮈르달역에 도착했다. 뮈르달역은 해발 866.8m 위치해 있다. 높은 설산에서부터 내려온 차가운 시냇물에 조심스럽게 꺼낸 맥주를 담가두었다. 바위에 앉아서 맥주가 차가워지기를 기다렸다.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염소 두 마리를 몰고 온 아버지와 아들이 서 있었다. 이 둘은 이렇게 앉아 맥주를 마시는 동양인을 이번 생에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동안 맥주는 시원해졌고, 기차역에서 주운 컵에 따라 마셨다. 누군가는 시간을 축낸 무색무취의 기차역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천상의 맥주를 선사한 파라다이스였다. 맥주의 이화학적인 품평은 의미가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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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아양조장 양조사 신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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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박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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