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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D NEWS

Interview

삶과 여행의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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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06월 호

여행의 시작과 끝은 결국 일상이다.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인 김민철은 행복하기를 단 한순간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여행에도, 삶에도 가장 필요한 태도라고 전했다.

Q _ 광고 회사에 근무하고 있고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일주일이 엄청 바쁠 것 같아요.
A _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제가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요.(웃음) 회사와 집만 오가다 보니 주중에는 회사 일에 집중하고 주말에는 글을 쓰고 강연 등의 부수적 활동을 해요. 그렇게 바쁘진 않아요.

Q _ 광고 회사의 근무 강도가 워낙 높잖아요.
A _ 맞아요. 그런데 저희 팀은 일을 엄청 빨리하는 팀으로 유명해요. 그럴 수 있는 이유는 팀 내 시스템이 잘 갖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회사에서 쓰는 엔진을 100% 가동하면 아무리 바쁜 기간이라도 오후 6시 퇴근은 꼭 지키게 되더라고요.

Q _ 그런 와중에도 신간이 나왔어요.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_ 작년에 팬데믹 시대가 시작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이 힘들어했잖아요. 여행을 못 가는 것도 그중 한 가지 이유였고요. 그런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는데 쓸데없는 책임감이 발동한 거예요. 여행에 갈증을 느끼고 여행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나를 위해서 어떻게 그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책을 읽으면서 여행하는 기분이 들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일반적인 에세이보다는 수신인이 있는 편지 형식이면 여행의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써 내려가는 편지 형식으로 책을 엮었어요. 편지라면 받는 사람과의 관계도 있고 글 안에서 계속 누군가의 자리를 마련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읽다 보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본인의 여행을 떠올리게 될 것 같았어요. ‘아, 나도 그 여행지에서 그 사람을 만났고 저런 감정을 겪었지’라면서 공감하길 바랐어요. 그 아이디어가 번뜩인 바로 그날, 점심시간에 카페에서 써 내려가기 시작했죠.

Q _ 아카이빙되어 있던 글이 아니었네요.
A _ 전혀 아니었죠. 예전 사진을 들여다보며 각 여행지에서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던 거예요. 저 역시 여행에 목매던 사람이니까 여행에 대한 갈급한 마음이 수신인 모두를 불러내게 된 거죠.

Q _ 여행하면서 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틈틈이 쓰는 편인가요?
A _ 네, 저는 기본적으로 제 기억력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써요.(웃음) 술 마실 때 생각나는 건 휴대폰에 간단히 메모를 해놓고 다음 날 노트에다 풍성하게 살을 붙여요. 그렇게 계속해서 메모를 하는 편이에요.

Q _ 술을 좋아하나봐요.
A _ 좋아해요. 특히 여행을 가면 술을 많이 마셔요. 유럽은 어딜 가도 와인이 저렴하니까 돈을 버는 기분으로 마시곤 합니다.(웃음) 이번 책에서도 술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와요.
  • 포르투갈 포르투의 겨울. 비가 그쳤고 겨우 해가 떴다. 어김없이 춥지만 포르투는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 포르투갈 에보라.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정이 보이는 것 같다.
    모자부터 옷과 신발까지 요정이 아닐 리 없다.

Q _ 작가님의 첫 여행이 궁금해요.
A _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는 게 유행이었어요. 첫 해외여행이라고 하면 스물세 살에 배낭 하나 메고 떠난 유럽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번 책을 쓰면서 진짜 나의 첫 여행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마이클 잭슨이 내한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대구 소녀였던 제가 혼자 버스를 타고 그 콘서트를 보러 서울에 갔죠. 그때가 분명 저 혼자서 어디론가 떠난 첫 번째 경험이었던 거예요. 그때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이 첫 여행의 기분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늘 유럽 여행을 첫 여행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책을 쓰면서 서울로 혼자 올라와본 그때의 경험이 첫 여행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Q _ 책에서 ‘서울 이모에게’ 쓴 편지를 봤어요. 좋아해 마지않는 가수의 공연 티켓을 사준 서울 이모와 이모부에게 쓴 편지였죠. 가슴 벅찬 마음에 사투리로 써 내려간 사춘기의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문장이요. ‘이제 진짜 공부 열심히 할게요.’
A _ 대구에서 서울까지 이모 부부의 도움으로 첫 여행에 대한 추억을 멋지게 완성시켰죠. 편지라는 걸 여행을 떠올리기 위해 쓰긴 했지만 편지의 특성상 따뜻하고 착한 말들만 반복하다 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투리로도 적어봤어요.
  • 로마 베르게제 미술관 앞 전경. 예약한 미술관 입장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뭔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 잎이 떨어지고 관광객도 몇 없는 앙상한 겨울의 로마. 테베레강에서 오후를 보냈다.

Q _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어디였나요?
A _ 매번 바뀌긴 하는데 지금은 가장 최근에 다녀온 미국 포틀랜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2018년 여름에 처음으로 포틀랜드에 갔는데 깊은 인상을 받아서 2019년 여름도 그곳에서 보냈어요. 포틀랜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도시예요. 유럽 같은 경우에는 선대에게 물려받은 문화유산에서 매력이 감지되는 나라가 대부분이잖아요. 포틀랜드는 카페부터 브루어리, 도시 시스템 등 현대인이 만들어낸 유산으로 점철된 곳이었어요. 미국인데 하루 5달러인 버스 티켓으로 포틀랜드 곳곳을 누빌 수 있고 자전거 도로가 차 도로만큼 넓고요. 시내에는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같은 대기업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어요. 오로지 작은 로컬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잘 되어 있어 장애인들이 혼자서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요.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여행지예요.

Q _ 여행을 하면서 꼭 행복감만 느끼는 건 아니잖아요. 작가님은 여행 도중 만난 우울에 어떻게 맞서나요?
A _ 저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고, 되레 외로움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사람이에요.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불행과 두려움을 언제나 동반하죠. 그럼 저는 그 안에서 정말 작은 행복을 느끼려고 해요.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서 ‘아, 지금 나는 여기 와서 너무 행복해’라고 주문을 외는 거죠. 어떻게 온 여행인데 오늘의 나를 가장 즐겁게 만들어야 해요.

Q _ 개인적으로 이번 책에서 이니셜로 쓴 수신자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밀라노를 떠올리며 D에게 쓴 편지요. ‘그 누구도 혼자 여행하진 않아’라는 문장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A _ 혼자 여행을 가도 어떤 풍경이나 사물을 보면 누군가가 생각나곤 하잖아요. 당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D가 가장 많이 떠올랐고요. 나누면 더 즐거워질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사람들은 함께 떠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발리 우붓의 짬뿌한 리지 워크. 각양각색, 각종 초록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던 곳이다.

  • 에디터 박진명
  • 사진 권태헌(인물), 김민철(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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