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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

예술가의 도시

세상을 뒤흔든 예술가들이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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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03월 호

도시가 사람의 영혼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 걸까.
예술가의 이야기가 흐르는 도시에서 세상을 뒤흔든 예술가들이 바라본 풍경에 비스듬히 시선을 걸쳤다.
화석 같은 과거를 견고히 다지고 가보지 않은 지난날을 반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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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빈] 우아함 속 광기

스물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에곤 실레(1890~1918)는 20세기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화가다. 클림트의 표현주의적 스타일을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데, 당대 최고 화가였던 구스타프 클림트는 에곤 실레의 친구이자 후견인이었다. 에곤 실레는 빈이라는 도시를 역동적이며 어떤 긴장감이 감춰진 곳으로 표현하곤 했다. 천재 예술가가 자극과 영감을 받은 빈이라는 도시는 20세기 초 커다란 논란이 일었다. 에곤 실레가 아무도 쉬이 드러내지 않던 성적인 욕망을 다룬 작품을 발표한 것이다. 그는 여성의 나체를 솔직하고 생생하게 드로잉하기 시작하며 온갖 추문에 휩싸였고 추방당하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이후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던 와중에 스페인독감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육체적 욕망 등 인간이 외면하고 싶은 솔직한 본능을 거침없이 표현한 에곤 실레는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빈 시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에곤 실레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곳은 레오폴트 미술관(Leopold Museum)이다. 레오폴트 미술관은 루돌프 레오폴트 박사 부부가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해놓은 곳으로 5000여 점 중 에곤 실레의 작품만 무려 220여 점에 이른다. 100여 점의 자화상 중 가장 인기 있는 걸작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 바로 이곳에 있다. 또 벨페데레 미술관(Belvedere Museum)에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몰락하던 당시의 시대상을 잘 표현한 작품들이 소장돼 있다. 그중 에곤 실레의 <가족>은 아내와 태어날 아이를 그린 작품으로, 공포심과 불안감으로 점철되어 있던 그의 작품 가운데 따뜻하고 포근함이 느껴지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결말은 결국 스페인독감으로 모두를 잃었다는 것이다.
클림트와 에곤 실레가 처음 만났다는 카페 무지움(Café Museum)은 1899년에 문을 열었다. 이 둘뿐 아니라 건축가 오토 바그너, 작곡가 알반 베르그 등 10세기 말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을 논하고 구상하던 곳이다. 당시 유행했던 화려한 인테리어와는 다르게 실용적인 디자인은 요즘 트렌드에 견주어도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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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곤 실레를 비롯한 19세기를 풍미했던 빈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벨페데레 미술관의 외부 전경.
    ©심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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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가 처음 만난 카페 무지움의 내부 전경.
    ©심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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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 화려함 뒤에 감춰진 고독의 도시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는 프란츠 카프카(1883~ 1924)는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 프라하를 ‘맹수의 발톱’에 비유했다.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도시라는 뜻에서다. 성에 불을 질러야 이 도시를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 도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 또한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유대인인 프란츠 카프카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냉대와 증오를 받으며 평생을 살아왔다. 이처럼 어두운 성장 배경은 그의 문학에 완전한 영향을 미쳤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 <변신>만 봐도 그렇다. 하루아침에 바퀴벌레로 변한 주인공이 느끼는 불편함, 외면, 무기력함이 상세히 표현되어 있다. 그는 단 한 번도 체코인인 적이 없다. 유대인의 자녀로 태어나 독일인도, 체코인도 아니었다. 불확실한 정체성에서 느끼는 끝없는 무기력함은 그의 작품의 완성이었다. 그래서 프란츠 카프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평생 어깨에 지고 살았다. 카프카의 예술성을 극대화한 건 그의 고독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프라하의 화려한 거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거리에 즐비한 고딕과 바로크,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 그리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프라하의 야경은 또 어떠한가.
프라하에서는 프란츠 카프카의 흔적을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카프카의 역사가 시작된 마이셀로바 유대교회당(Maiselova Synagoga)은 그의 생가로 유명하다. 1689년 화재로 소실되고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가 다시 신고딕 양식으로 탈바꿈했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보면 가장 눈에 띄는 유로파 호텔은 대중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카프카가 최초로 공개 낭독회를 열었던 곳이다. 프라하 아르누보의 초기 걸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Franz Kafka Museum)은 카프카가 수기로 쓴 작품 초안들과 편지, 사진 등 그의 모든 것을 모아둔 곳이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모든 생각과 작품들을 불태워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카프카의 평생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인 막스 브로트는 그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해 세상에 내놓았다. 카프카는 죽어서도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는 게 아닌가라는 안타까움과 고독했던 그의 삶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동시에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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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의 전경. 이곳에서는 그의 모든 생을 추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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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의 야경. 밤이 되면 화려한 황금색 불빛으로 물드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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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츠 카프카가 자주 찾곤 했던 카페 루브르(Café Louvre).
    1902년에 문을 연 이곳은 당시 지식인과 부르주아들이 자주 드나들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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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도시의 모든 것들이 천재 예술가의 영감이 되다

사과는 수많은 역사를 바꾸었다. 이브는 사과를 먹고 인간에게 아이를 낳는 고통과 스스로 일해 먹고살아야 하는 저주를 얻었고,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발견했다. 폴 세잔(1839~1906)은 바구니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과들을 그려 회화의 규율을 깼다. 천재 예술가 폴 세잔은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유년과 노년을 보냈고 영원히 잠들었다. 은행 창업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그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술적 재능을 일찍이 인정받아 인상주의, 사실주의, 상징주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게 됐다. 중고등학교 시절 에밀 졸라를 만난 그는 함께 파리로 향했다. 파리는 그에게 또 다른 세계였다. 하지만 이내 파리 생활에 지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은 그의 작품에 무수한 영향을 끼쳤다. 자연이 만든 풍경과 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쨍한 햇빛, 그리고 여유로운 바람이 뒤섞여 특유의 색감을 자아냈다.
엑상프로방스의 자연환경은 세잔의 새하얀 도화지를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생트빅투아르산은 에밀 졸라, 장 바티스탕 바유와 함께 오르내리며 젊은 시절을 보낸 곳이다. 이 석회산은 유화 작품 44점과 수채화 작품 43점에 등장해 세잔의 뮤즈라고도 불린다. 비베뮈스 채석장(Bibémus)은 생트빅투아르산 근처 솔밭에 숨겨져 있는데, 세잔은 이곳의 다양한 황갈토 색채와 입체적인 선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마자랭(Mazarin) 구역에 자리한 그라네 미술관(Musee Granet)에는 세잔의 작품 10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어릴 적 이 미술관은 순수미술 박물관이었는데, 여기서 처음 데생 수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18세기 저택 자드부팡(Jas de Bouffan)에는 폴 세잔이 20대에 그린 작품들이 있다. 세잔이 프로방스에 머물 때면 항상 이 저택에서 지내서인지 이곳의 오렌지나무 정원이나 밤나무 산책로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구시가지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그의 무덤이 나오는데,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매일 풍경을 보러 간다. 그 배경은 아름답고 나는 그 어느 곳에서 보다 더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다.’ 풍경화를 그리던 도중 쓰러져 폐렴으로 사망한 폴 세잔이 얼마나 이 도시를 사랑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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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폴 세잔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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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상프로방스의 중심가 미라보 거리에 있는 레 되 가르송(Les Deuc Garcons)은
    폴 세잔이 매일밤 커피를 마시던 카페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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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세잔의 색채에 영향을 준 엑상프로방스 자연의 색깔.
  • 에디터 박진명
  • 사진 AB-ROAD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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