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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

유유자적, 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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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 대한민국 > 대전

발행 2021년 02월 호

대전광역시를 아직도 ‘노잼 도시’라고 여기는 독자들은 주목하시라.
노잼을 ‘예스잼’으로 바꿔줄 대전에서 유유자적 인문 여행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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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 코스 : 동춘당—쌍청당—송애당—취백정

조선 사대부의 가장이 지내던 별당인 동춘당, 쌍청당, 송애당과 문인이 학문을 연구하던 취백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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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보물, 동춘당

동춘당은 대전 지역에서 유일한 국가 보물로서 조선 중후기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1606~0672) 선생이 거처하던 별당이다. 선생은 ‘만물과 더불어 봄을 함께한다’는 뜻의 동춘당을 호로 삼고 거처하던 별당의 당호로도 사용했다. 앞서 언급했듯 별당이란 조선 사대부의 가장이 손님을 맞거나 독서나 강학 등을 주로 했던 공간이다. 병조판서, 이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낸 송준길 선생은 이곳 동춘당에서 세상을 하직했다. 건물 중앙에 걸린 현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썼는데, 이 편액을 통해 현대에 있는 우리가 옛 선비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선조들이 추구했던 삶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춘당은 370년 정도 된 건물이다. 물론 기와나 서까래 등 부분적으로 보수를 해왔지만 소박하고 정다운 자태만큼은 옛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동춘당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해 언제든 걷기 좋다.
location
대전 대덕구 동춘당로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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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당의 최초 모델

쌍청당은 조선 전기 학자인 쌍청당 송유(1389~1446) 선생이 지은 별당이다. 동춘당과 마찬가지로 선생의 호인 쌍청으로 당호를 정했는데, 쌍청은 ‘하늘과 땅 사이에는 바람과 달이 가장 맑다’는 뜻으로 박팽년의 당기에서 따왔다. 이는 청풍과 명월의 맑은 기상을 마음에 담고자 한 것이다. 송유 선생은 은진송씨 가문을 번성하게 한 장본인으로 태조와 정종 때 벼슬에 올랐다. 쌍청당은 그의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가 녹아 있는 건물로, 조선 세종 14년(1432)에 지은 후 여러 차례 보수했으나 본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쌍청당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이유는 별당 건축물 중 가장 먼저 지어져 후에 지어진 별당의 모범적인 형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건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청을 입혀 당시의 건축 미학을 잘 보여준다. 당시 단청 원료는 중국에서 수입해온 비싼 고급 자재였다. 이를 사치라고 판단한 세종 11년에 단청을 금지한 터라 이전에 칠해진 단청이 희귀할 수밖에 없다.
location
대전 대덕구 동춘당로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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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우직함

쌍청당과 바로 인접한 송애당은 조선 효종 때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김경여(1596~1653) 선생의 별당이다. 송애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치 않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소나무의 곧은 절대와 굳센 기상을 간직하겠다는 의미다. 김경여 선생은 인조 10년에 문과에 급제해 예조정랑을 거쳐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호종(임금을 모시는 일)했다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회덕으로 돌아왔다. 그때 송애당을 짓고 거처한 것. 지금은 도시개발로 인해 침상을 두었던 공간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지고 별당인 송애당만 남았다. 송애당 앞마당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을 새긴 바위가 놓여 있다. 그 뜻을 풀이하자면 ‘비록 서리와 눈이 내리고 바람 불고 천둥이 치더라도 그 본성은 변함이 없다(송유후조지절 애유벽립지상)’라는 것이다.
location
대전 대덕구 중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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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 언덕 위 취백정

우뚝 선 언덕 위에 존재감을 내뿜으며 홀로 자리한 취백정은 조선 후기 문신인 제월당 송규렴 선생이 숙종 27년(1701)에 학문을 갈고닦던 정자다. 송규렴 선생은 충청도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내고 예조판서, 대사헌 등에 임명되었다. 학문이 뛰어나 송준길, 송시열과 함께 삼송(三宋)이라 일컫는다. 마지막 목적지인 취백정은 팔작지붕이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정자 중앙에는 정조 임금이 친필로 써서 내린 ‘사호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중국의 신선 넷이 살았다는 ‘상산사호(商山四皓)’ 고사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이 현판은 광복 이후 소실되었다.
location
대전 대덕구 미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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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박진명
  • 사진 윤희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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