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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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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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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1년 01월 호

유럽인들에게 광장은 아고라(Agora)적인 의미를 넘어 문화, 예술 그리고 공동체 생활을 아우르는 공간이다. 여행자에겐 여행의 시작점과 끝점이 되고, 현지인들에겐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고 삶의 근간이 되는 광장 5곳을 소개한다.
나보나 광장의 전경. 저마다의 모습들이 어우러져 풍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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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y] 수천 년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 나보나 광장 Piazza Navona

광장을 빼고 이탈리아 로마를 논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영어에도 ‘Square(광장)’라는 단어가 있지만, 세계 어디서든 이탈리어인 ‘Piazza’라고 부르니까. 낮이고 밤이고 로마 곳곳의 광장에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광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상권 또한 어마어마한데, 이것 역시 광장이 이탈리아, 아니 유럽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 왜 유럽에는 광장이 이렇게나 많으며 발달했을까? 이러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나보나 광장이다. 전형적인 유럽의 광장 기능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나보나 광장에는 거리의 화가들, 악사들, 카페, 노천 식당,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무심히 스쳐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발 디딜 틈 없는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기다림과 만남의 공간이기도, 로마의 문화와 예술을 계속해서 꽃피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길게 늘어선 전통시장을 보면 생활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여행객과 현지인이 함께 호흡하고 공생하는 장소인 셈.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공간은 정치적인 기능을 위해 조성된 광장이다. 나보나 광장 중심에는 베르니니가 조각한 ‘네 강의 분수’가 자리해 있다. ‘네 강의 분수’는 네 개의 강인 도나우, 나일, 갠지스, 라플라타를 의인화한 4인의 거인상과 각 대륙을 대표하는 동식물, 그리고 중앙에는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이 광장을 조성한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는 자신과 가문의 권위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 분수를 세우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계몽했다. 비록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목적으로 쓰였지만 후대에서는 이 분수 자체만을 놓고 가톨릭 권위의 부활과 바로크 미술의 본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우리는 나보나 광장을 거치지 않고 도로를 건널 수 없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인 산탄젤로성(Castel Sant’ Angelo), 고대 건축물 판테온, 트레비 분수 등 주요 로마 유적지로 가려면 이곳을 지나쳐야만 한다. 수천 년의 로마 역사를 기억하는 나보나 광장은 평화의 공간이 되어버린 지금도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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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보나 광장 뒷골목은 갤러리를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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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보나 광장에서 열리는 장터. 로마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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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den] 500년을 품은 용맹한 역사의 장, 스토르토리에트 광장 Stortorget

‘대광장’이라 불리는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은 스톡홀름의 구시가지인 감라스탄 지구에 자리해 있다. 한때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점령했던 강대국의 위용을 증명이라도 하듯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감라스탄은 기상과 여유가 어우러져 어쩐지 품위가 느껴진다. 이 구시가지는 여행자들이 사랑하는 곳이자 스톡홀름 사람들도 아끼는 곳이다. 야트막한 골목 위에 있는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은 여러 갈래 골목길을 연결하는 중심지다. 광장에서는 매일같이 음악이 흐르고 춤판이 벌어지며 수많은 인연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이기도 하고 중세 시대엔 대기업이 밀집해 경제적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이 광장은 피로 얼룩진 역사를 지니고 있어 ‘피의 광장’이라고도 불린다.
이야기의 시작은 15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웨덴을 지배하던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스톡홀름 귀족 82명의 목을 쳐서 이곳에 묻어버린 것. 해묵은 이 무덤을 ‘해골샘’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그 위로 비틀스의 ‘I will’이 흐른다. 비참한 역사의 현장을 밟고 일어서 젊은 음악가들의 전당이 됐다. 이 사건은 스웨덴 국민들을 연대하게 하는 동력이 됐고 마침내 농민과 귀족이 하나 되어 덴마크 세력을 몰아내면서 이듬해 독립을 이루고 만다.
해골샘 앞에는 노벨 박물관이 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인 그 ‘노벨’이 맞다. 스웨덴 사람인 알프레드 노벨은 스톡홀름에서 태어났지만 줄곧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이탈리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스웨덴은 몇 번 방문한 게 전부이지만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후 이로부터 얻은 모든 수익을 국가에 전액 기부하고 재단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 덕분에 스웨덴이 높은 과학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셈. 노벨 박물관에는 노벨상의 역사와 역대 수상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전시돼 있다. 그 옆을 지나면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대성당과 1754년에 완성된 왕궁 등을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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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 솟은 첨탑이 눈길을 끄는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의 모습. 광장을 눌러 싼 색색의 3~4층짜리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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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라스탄 골목에서 내려다 본 모습. 멜라렌 호수와 발트해가 만나는 지점인 스톡홀름은 스웨덴어로 ‘통나무 섬’이라는 뜻이다.
  • 에디터 박진명
  • 사진 AB-ROAD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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