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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누하동이라는 기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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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 대한민국 > 서울

발행 2020년 11월 호

인왕산 바로 밑에 있는 누하동이라는 동네.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지만 목적 없이 그저 걸어도 좋고,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잠깐 들르기에도 좋은 기착지 같은 곳이다.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세월이 만들어낸 이곳에 자리 잡은 공간을 그러모았다.

근대 회화의 거장 청전 선생의 터, 이상범 가옥과 화실

누하동 골목 사이에 자리한 국가등록문화재 제171호인 청전 이상범 가옥과 화실. 1930년대 누하동을 비롯해 경복궁 서쪽 지역에 형성됐던 문화예술인의 도시형 한옥 건물로, 청전 선생이 1972년에 작고할 때까지 43년간 거주한 곳이다. 청전 이상범 화백은 동양화가로 한국화의 거장이라고 불릴 만큼 근현대 시대의 동양화를 이끈 동양화단의 스승이며 한국인이 사랑하는 산수화가다. 가장 뭉클한 그의 업적은 바로 동아일보 미술 담당 기자 시절, 동양인 최초로 마라톤에서 우승을 손에 거머쥔 손기정 선수와의 일화다. 그는 올림픽 기사 사진 중 손 선수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슥 지웠다. 지워진 일장기 때문에 고문을 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그런 청전 선생의 삶을 반영하는 작품의 영감과 순간이자 작가가 거쳐온 시간과 공간의 생생한 증언인 이 가옥은 ‘ㄷ’자 형태로 마루부터 안채, 사랑채, 화실까지 모두 연결되는 구조다. 실제 청전 선생이 쓰던 미술 도구가 놓여 있고 물감도 굳은 채 그대로 있다. 그리고 지금은 먼지 쌓여버린 고서가 가지런히 정돈 돼 있다. 입장료는 없으며, 내부에서도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location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31-7

유럽 베이커리로의 여행, 서촌 스코프

부암동에서 2014년 문을 연 스코프는 스콘, 비스킷과 각종 과일을 얹은 케이크, 이스트로 부풀린 달달한 번, 초콜릿 디저트 등 차와 잘 어울리는 메뉴를 선보인다. 누하동 뒷골목에 자리 잡은 서촌 스코프 또한 부암동과 마찬가지로 접근성이 떨어지고 유동인구도 많지 않지만 서촌의 매력을 매장에 그대로 녹이고 싶었다. 오래된 2층 단독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간단한 소품이나 간판, 문 등 디테일한 부분으로 스코프의 색을 살렸다. 매장 내부는 유럽 빈티지 소품들로 이국적인 느낌을 꽉꽉 채웠다. 스코프에 발을 딛는 순간, 유서 깊고 오래된 유럽 골목 빵집에 들어선 것 같다. 빵의 퀄리티가 가장 큰 인기 요인이겠지만 오랜 고객들은 변치 않는 매장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조용했던 누하동 뒷골목이 매일 아침 스코프에서 풍기는 버터 향에 활기를 얻는 듯하다. 작은 빵집으로 시작했지만 하나의 브랜드가 된 스코프는 ‘영국식 베이커리’로 국한하기보다 좋은 제품이라면 자유롭게 스코프의 맛으로 소화해내고 싶다.
location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5가길 31
tel
070-7761-1739
info
브라우니 4500원, 레몬케이크 4000원

조용한 놀이터, 풍류관

카페 스펙터의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풍류관. 이번에는 경복궁역에서 더 들어와 누하동 뒷골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픈한 지 막 1년이 된 풍류관은 이름 그대로 풍류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가장 한국스러운 동네에 커피나 와인, 디저트 같은 서양의 것들을 채워보고자 했다. 옛날 시골 할머니 집에서나 볼 법한 오브제들로 공간을 꾸미고 더욱 동양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조도를 낮췄다. 건물 외관도 옛날 주택을 그대로 살렸다. 마당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는데,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들이 잠시 앉아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풍류관은 서촌이라는 동네에 잘 스며들어 동네 주민들과도 상생하고 소통하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건 디저트 메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추, 월광 등 디저트 이름이 눈길을 끄는데, 커피뿐만 아니라 와인과도 잘 맛이 잘 어우러진다. 만추의 경우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밤이나 단풍잎 등 가을 하면 떠오르는 재료를 모티프로 근사한 디저트를 만들었다. 월광은 요즘 트렌드인 크로플과 무화과 그리고 부라타치즈를 앞쪽에 배치해 달이 빛나는 것처럼 보여 작명했다. 풍류관에서는 어느 한곳에 집중하기보다 흘러가듯 안에 채워진 모든 것들을 즐기길 바란다.
location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5나길 20-12 1층
tel
010-7923-0006
info
싱글오리진 변동, 만추 9000원
  • 에디터 박진명
  • 사진 윤희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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