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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누하동이라는 기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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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 대한민국 > 서울

발행 2020년 11월 호

인왕산 바로 밑에 있는 누하동이라는 동네.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지만 목적 없이 그저 걸어도 좋고,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잠깐 들르기에도 좋은 기착지 같은 곳이다.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세월이 만들어낸 이곳에 자리 잡은 공간을 그러모았다.

누하동 아지트, 무목적

경복궁을 따라 누하동으로 진입해 큰 도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보이는 건물이 있다. 4층에 있는 유명 카페 ‘대충유원지’가 들어선 그 건물은 이름조차 신비한 ‘무목적’. 간판 하나 걸어놓지 않고도 건물 그 자체로 존재감을 마구 발산한다. 있으나 마나 한 건물보다는 서촌이라는 동네의 맥락에 잘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권택준 대표는 외관부터 건물의 콘텐츠까지 세세하게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세밀한 감각은 외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콘크리트를 다 굳힌 상태에서 일부러 스크래치를 내 동네의 결을 해치지 않도록 했다. 또 재미있는 점은 건물의 형태다. 밖에서 보면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지만 본래 지대가 다른 두 건물을 이은 것이다. 건물 안 머무르는 장소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이는 굽이굽이 이어져 있지 않은 서촌의 골목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건물의 형태만큼이나 채워져 있는 콘텐츠도 흥미롭다. 3층 전시관은 본래 갤러리를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 아니었다. 오픈 후 잠시 비어 있던 시기에 4층 카페에 들렀다가 3층의 빈 공간을 보게 된 작가가 대관 문의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고. 첫 전시를 할 때만 해도 조명이나 에어컨 등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지만, 오히려 투박하고 컨템포러리한 매력에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때 권 대표는 3층에서 전시를 보고 4층 카페에 가서 커피나 와인을 마시고, 1층 핸드크래프트 숍인 팀블룸에서 소품을 보는 등 사람들이 오고 가며 건물에 활력을 불어넣는 순환의 힘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무목적이라는 공간은 느리지만 쉽게 변하지 않고 다른 데에선 찾아볼 수 없는 콘텐츠가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나아가 나만 알고 있는 특별한 공간, 이름처럼 특별한 목적 없이 찾아도 좋을 공간이 되고 싶다.
location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46 무목적 3층
tel
02-792-9075
website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mu.mokjeok

한 폭의 수묵화, 인왕산 대충유원지

‘커피 문화가 한국에서 생겨났다면 전 세계의 카페는 스타벅스가 아니라 대충유원지의 분위기를 따르지 않았을까’라고 감히 생각할 정도다. 그만큼 대충유원지는 한국적인 요소에 커피를 적절하게 녹여냈다. 대충유원지의 시작은 사실 연남동이었다. 인왕산 자락 아래서 시작하려고 했으나 마음에 드는 공간이 없어 연남동에서 먼저 터를 잡은 것. 이곳은 활기차고 동적인 연남동의 대충유원지와는 메뉴 구성부터가 다르다. 연남동은 통통 튀고 캐주얼한 느낌이라면, 이곳 대충유원지는 좀 더 정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가구 역시 모두 자체적으로 제작해 같은 제품을 썼지만 색감을 달리해 다른 분위기를 냈다. 인왕산 대충유원지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고 모두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카페에 들어서면 인왕산의 위엄과 정기를 새삼 느낄 수 있다. 그 밑으로 보이는 한옥의 기와지붕들이 분위기를 더한다. 대충이라는 뜻은 대강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자어로 호랑이라고도 한다. 카페의 중심이 되는 인왕산은 본디 호랑이가 웅크린 형국의 산이라는 수식어를 가졌다. 이러한 인왕산을 뒤로한 채 바리스타가 반가이 손님을 맞는다. 카페의 가구나 기물, 구성, 바리스타의 움직임까지 모두 한 편의 수묵화 같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깥 풍경을 배경 삼아 손님들은 커피와 술, 그리고 분위기를 즐긴다.
location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46 4층
tel
070-7807-5640
info
말차라떼 8000원, 하우스 와인 4만5000원
  • 에디터 박진명
  • 사진 윤희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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