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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1년 05월 호

네덜란드 수도원 호텔 크라이스헤이런

Inspiration from the Past

과거의 찬란한 유산이 21세기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며 화려하게 재탄생되었다. 신을 숭배하던 엄숙한 수도원이 호텔로 업종 변경을 선언했다. 재기발랄한 아트워크로 감각적인 공기를 더한 근사한 돌연변이!

멀리 풀 뜯던 양떼가 종종 울어대고 바람에 종려나무는 흔들리지만 풍경은 정물화처럼 고요한 곳. 네덜란드 도시 중 수도원이 가장 많은 마스트리흐트(Maastricht)는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2시간 30분 떨어진 남부 마을이다. 키 껑충한 친구들 틈에서 어울리던 작은 아이가 그러하듯 서쪽으로 벨기에와 프랑스, 동쪽으로는 독일 틈에 싸여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던 탓에 수세기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의 소용돌이가 유럽을 휩쓸고 지나가도 이곳의 로마네스크 건축들은 꼿꼿이 제 모습을 지킬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종교인들의 은신처이자 렘브란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요하네스 베르메르 등 내로라하는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을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예술이 일상에 젖은 무딘 감각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면 번뜩이는 디자인은 박제된 중세의 마을을 젊고 유쾌하게 바꾸는 힘을 가졌다. 강화유리 속 유품 같던 마을이 최근 하나 둘 업종 변경을 선언하고 나선 것. 1238년에 세워진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을 개조한 디자인 호텔 크라이스헤이런이 그 대표다. 치솟은 첨탑,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천장과 벽을 수놓은 16세기 웅장한 프레스코 벽화는 지난 수세기 동안 이어온 네덜란드 가톨릭의 힘을 가늠케 한다. 하지만 붉은 황금색 강철로 마무리한 입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기묘한 환영에 사로잡히게 된다. 예배당이었을 법한 호텔 로비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모던한 통유리 엘리베이터, 스테인글라스에서 쏟아지는 색색의 빛을 반사하는 와인 셀러와 와인 바, 그리고 아찔하게 높은 천장 벽화 아래 달린 세계적인 조명 아티스트 잉고 마우러(Ingo Maurer)의 핑크 비행 접시 조명까지. 곳곳에 발랄함이 가득하다.
계단을 올라 카펫의 끝에 다다르면 과거 수도회의 수사들이 복음서를 필사했을 골방에는 베르너 팬톤의 의자와 테이블 등 거장들의 마스터피스로 채워져 있다. 과거와 미래 그 중간 어디쯤일 발칙한 프로젝트가 누구의 센스인가 했더니, 파랑과 흰색으로만 기억되던 그리스에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경쾌한 파스텔을 입힌 세미라미스 부티크 호텔을 진두지휘한, 현재 유럽에서 가장 핫하기로 손꼽히는 디자인 그룹 MIMOA의 작품이다. 화려함과 기교, 창의적인 감각이 이곳의 전부는 아니다. 수도원이었기에 가능한, 150명은 넉넉히 모여 앉을 수 있는 정원은 크라이스헤이런의 하이라이트다. 예약을 하면 개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 수도원에서의 파티도, 결혼식도 꿈꿔도 좋다. 매일 밤 누릴 수 있는 아베다 스파는 영혼에 육체까지 위로하며 호텔 본연의, 수도원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쓰임이 바뀌었다 해도, 인테리어가 변했다 해도 바뀌지 않는 것은 수세기 동안 이곳을 지켜온 편안한 적막이다. 혼잡하고 혼탁한 지구와는 수억 광년 떨어진 작은 행성에서 보내는 담담하고도 황홀한 하룻밤! 수도원과 호텔에 우리가 기대하는 교집합이 바로 이곳에 있다.

주소 Kruisherengang 19-23 6211 NW Maastricht The Netherlands
전화 31-043-329-20-20 가격 199~415유로 홈페이지 www.chateauhotels.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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