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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2년 03월 호

호텔 등급 표시의 딜레마

Beyond the Star

별들로 탑을 쌓을 기세다. 개수가 다섯 손가락을 넘긴 지는 이미 오래다. 준4성, 준5성 혹은 6성급, 7성급. 준과 급으로 얼버무린 표현도 득실댄다. 호텔의 별들, 과연 믿을 만한 빛일까. 더하고 더하고 또 더하고. 호텔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의 뒷이야기.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에는 유머와 냉소가 뒤섞인 장면이 하나 있다. 보물을 찾아나선 주인공 틴틴과 하독 선장이 해적 일당과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며 중동의 항구 마을을 들쑤신다. 하늘과 육지, 바다와 숲 대중없다. 그리고 그 여파에 호텔이 움직인다. 비탈길 위 주택가와 뒤섞여 있던 호텔은 추격전의 진동으로 바닷가까지 떠밀려 내려온다. 남의 동네까지 와서 싸우는 일당이 밉기만 할 텐데 주인장은 오히려 화색이다. 때 아닌 민폐로 오션 뷰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로 호텔 입구에 별 하나를 더 단다. 그렇게 이 호텔은 4성이 된다. 참 쉽다. 물론 영화 속 이야기이긴 하지만 호텔의 별은 실제로도 이만큼 애매하고 모호하다. 가끔은 개수에 속고, 또 가끔은 개수에 현혹돼 객실의 등급을 간과한다. 시설 경쟁이 한창인 요즘, 등급 시스템이 호텔의 화려함을 따라가지 못하기도 한다. 별들의 질서, 애초에 원칙은 뭘까.
별 호텔이 다 있다. ‘준’과 ‘급’으로 등급을 에두른 호텔부터 별 대신 다이아몬드를 붙인 호텔, 슈페리얼, 프리미엄 등 호화로운 단어로 치장한 호텔과 한글로 호텔이라 쓰고 영어로 인(Inn)이라 표기한 곳까지. 질서가 막무가내다. 국내에선 별 대신 무궁화를 달고, 숫자로 표기할 경우 ‘특’자를 붙이기도 한다. 무엇을 믿고 골라야 할지 난감하다. 별에 대한 신용도의 문제는 통일성 없는 등급 표기 문제와 맞물려 투숙객을 혼란케 한다. 일본의 비즈니스 호텔은 국내의 모텔보다 시설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유럽의 여관(Inn) 중에는 제법 높은 수준의 시설을 갖
춘 곳도 있다. 일반 여행자의 경우 별 4개 이상은 고급, 그 이하는 비즈니스급이라 쉽게 생각하지만, 비슷한 가격의 준4성과 4성 사이에서 선택은 꽤 어려워진다. 게다가 점점 심해지는 호텔 업계의 별 싸움은 별을 제외한 호텔의 제반 사항을 감춘다. 여행자가 호텔에 바라는 것이 정말 밤하늘의 별뿐일까. 별들의 전쟁 속에서 호텔은 결국 가격이냐, 호화로움이냐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물론 기준은 있다. 대부분의 호텔은 엘리베이터 유무, 전망, 교통 시설 접근성, 객실 종류, 레스토랑 수준, 부대 오락시설의 다양성, 스파와 피트니스 센터 유무 등으로 등급을 나눈다.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그리스, 벨기에 등 유럽의 대다수 국가는 법으로 호텔 등급 기준을 명시하고 있고, 프랑스에서는 관광청이 이를 관리한다. 물론 나라별로 별을 다는 기준의 척도도 다르다. 국내에서는 현관-로비-복도, 객실, 식당-주방, 주차 시설, 건축 및 설비 등 모두 9가지 항목으로 점수를 매겨 총점으로 등급을 매기고, 유럽과 미국에서는 객실 수, 특정 부대시설 유무로 커트라인을 정한다. 유럽에서 1, 2급이라 불리는 호텔은 별로 환산하면 3성 언저리가 된다. 변환기가 필요하다. 결국 2009년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헝가리,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가 참여해 ‘호텔 스타 유니온(Hotelstars Union)’을 만들었다. 이 단체는 가입국 호텔 등급 체제의 동일화 작업을 하고 있다.
척도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발 사이즈도, 티셔츠와 속옷 사이즈도 나라마다 서로 다른 자를 쓴다. 호텔 별의 기준이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다. 통일할 필요가 없다. 다만 시설 경쟁, 럭셔리 마케팅 경쟁이 호텔의 척도를 별로 한정시켰다. 모두가 태평양이 보이는 창가 객실을 원하지는 않는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 들어선 아늑한 느낌의 로비가 여행자에게는 더 높은 별의 호텔일 수도 있다. 이기 팝, 밥 딜런 등의 체취가 남아 있는 뉴욕의 첼시 호텔, 요코하마의 개항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그랜드 호텔 등의 낭만을 별의 개수로 잴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6성, 7성을 외치는 듯 보여도, 소위 디자인 호텔, 부티크 호텔에서 별의 시스템은 가볍게 무시된다. 여행자의 구미를 화려함의 수치만으로 채울 순 없다. 호텔은 로망이다. 여행의 한 챕터다. 별을 향한 맹목적인 경쟁이 호텔을 낭만의 항목에서 삭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행에서 별은 호텔이 아닌 마음에 품고 싶다.

호텔의 이름보다 별의 개수가 더 중요해졌다. 6성, 7성이라 자랑하는 곳이 많지만 현재 등급 시스템상 세계 어디에도 5성 이상의 호텔은 없다.

디트로이트의 한 호텔. 객실의 크기, 부대시설의 다양성 못지않게 이제는 객실 뷰가 별 개수를 좌우한다

서비스도 호텔 등급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유럽의 많은 호텔 리뷰 사이트들은 중국의 호텔이 등급 기준에 서비스를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별의 개수를 내세우지 않는 호텔이 더 많다. 개성과 콘셉트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다.
  • 에디터 정재혁
  • 사진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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